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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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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전통혼합적 측면 – 유교, 불교
2. 韓國社會의 宗敎混合的 傳統의 延長이다. “옛적에는 판이 적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亂局)을 바로 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混亂)을 바로 잡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증산은 현대사회의 諸 문제는 단일 기성종교의 역할이나 기능만으로는 수습될 수 없으며 모든 종교의 장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종교혼합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각 종교의 기본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당시의 사회현실에 대한 기성종교의 기능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하에서 각 종교에 대한 비판과 수용의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증산교의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본다. 1) 유교적 측면 유교에 대해서는 그는 당시의 유교를 부유(腐儒)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유교가 조선시대 오백년간의 지배계급의 윤리로서 대두되었지만 그것이 조선사회의 부패를 가져온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仁義禮智信의 五德을 찬양하고 誠·敬·信으로써 인격 수양을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忠․孝․烈의 윤리적 기강(紀綱)을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유교의 大學이나 孔子, 通鑑 및 書伝과 같은 경전을 추종자들에게 권함으로써 유교의 도덕적인 윤리와 범절을 자신의 종교에 포함시켰다. 2) 불교적 측면 불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다. 즉 불교의 자기구원 방법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죄를 짓지 말고 전생부터의 묵은 業을 깨기 위하여 심법을 닦는 것인데, 수도의 도량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세계이다. 따라서 무수한 윤회과정을 통하여 점진적 자기 완성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인간의 도덕적 접근에는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자손을 두어야 하는 우주 자연법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成佛한 자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불교의 궁극적 구원인 성불은 선천우주의 상극성에 비추어 보아 비현실적이며, 이에 따라 불교의 구원관에는 우주의 순환원리가 결여되어 있어 마음 닦는 것에 치중한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彌勒佛로 자인(自認)하였으며 자신이 세계에 강림할 때 금산사 미륵불상에 30년동안 의탁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나는 원래 미륵불이었는데, 人世에 환생하여 5만년의 용화세계 運道를 짜놓고 금산사의 미륵불로 귀의하여 있을 것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찾아 오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 불양답이나 차지하리라.”2)고 함으로써 불교와 관련시키고 있다. 실제로 종도 김형렬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증산의 靈體로 신봉하였다. 이처럼 미륵신앙은 불교신앙이지만 증산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륵불과 같은 이러한 진인 출현설은 정확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 폭압과 현실적 고통이 심할수록 민중에게 설득력있는 신앙으로 표면에 드러나게 되고, 민중들은 미륵의 하생과 함께 이 眞人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이것은 민족운동의 퇴조기에는 일단 사라지거나 불신되지만 17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기록만 보더라도 민중운동의 상승기에는 역사의 새로운 움직임과 밀착되어 그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형성되는 이야기처럼 긴박한 설득력을 가지고 민심을 선동하고 규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미륵신앙의 증산교적 수용은 증산이 20세기에 출세한 미륵이므로 한층 더 구체화한 것이고, 증산사상에 나타나는 후천선경은 용화세계보다 현대감각에 알맞게 발전,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사회의 전통혼합적 측면 – 유교, 불교
2. 韓國社會의 宗敎混合的 傳統의 延長이다. “옛적에는 판이 적고 일이 간단하여 한 가지만 따로 쓸지라도 능히 난국(亂局)을 바로 잡을 수 있었거니와 이제는 판이 넓고 일이 복잡하므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능히 혼란(混亂)을 바로 잡지 못하리라.” 여기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증산은 현대사회의 諸 문제는 단일 기성종교의 역할이나 기능만으로는 수습될 수 없으며 모든 종교의 장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즉 종교혼합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각 종교의 기본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도 당시의 사회현실에 대한 기성종교의 기능에 대해서는 강하게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하에서 각 종교에 대한 비판과 수용의 정도를 살펴봄으로써 증산교의 혼합주의적인 성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본다. 1) 유교적 측면 유교에 대해서는 그는 당시의 유교를 부유(腐儒)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유교가 조선시대 오백년간의 지배계급의 윤리로서 대두되었지만 그것이 조선사회의 부패를 가져온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仁義禮智信의 五德을 찬양하고 誠·敬·信으로써 인격 수양을 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忠․孝․烈의 윤리적 기강(紀綱)을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유교의 大學이나 孔子, 通鑑 및 書伝과 같은 경전을 추종자들에게 권함으로써 유교의 도덕적인 윤리와 범절을 자신의 종교에 포함시켰다. 2) 불교적 측면 불교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가졌다. 즉 불교의 자기구원 방법은 새로운 업을 만드는 죄를 짓지 말고 전생부터의 묵은 業을 깨기 위하여 심법을 닦는 것인데, 수도의 도량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세계이다. 따라서 무수한 윤회과정을 통하여 점진적 자기 완성으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인간의 도덕적 접근에는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자손을 두어야 하는 우주 자연법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하여 成佛한 자의 수는 극히 제한적이다. 불교의 궁극적 구원인 성불은 선천우주의 상극성에 비추어 보아 비현실적이며, 이에 따라 불교의 구원관에는 우주의 순환원리가 결여되어 있어 마음 닦는 것에 치중한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을 彌勒佛로 자인(自認)하였으며 자신이 세계에 강림할 때 금산사 미륵불상에 30년동안 의탁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나는 원래 미륵불이었는데, 人世에 환생하여 5만년의 용화세계 運道를 짜놓고 금산사의 미륵불로 귀의하여 있을 것이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찾아 오라, 금산사 미륵은 여의주를 손에 들었으나 나는 입에 물었노라. 불양답이나 차지하리라.”2)고 함으로써 불교와 관련시키고 있다. 실제로 종도 김형렬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증산의 靈體로 신봉하였다. 이처럼 미륵신앙은 불교신앙이지만 증산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륵불과 같은 이러한 진인 출현설은 정확이 언제 생겨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치적 폭압과 현실적 고통이 심할수록 민중에게 설득력있는 신앙으로 표면에 드러나게 되고, 민중들은 미륵의 하생과 함께 이 眞人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이것은 민족운동의 퇴조기에는 일단 사라지거나 불신되지만 17세기 말과 19세기 초의 기록만 보더라도 민중운동의 상승기에는 역사의 새로운 움직임과 밀착되어 그때에 비로소 처음으로 형성되는 이야기처럼 긴박한 설득력을 가지고 민심을 선동하고 규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미륵신앙의 증산교적 수용은 증산이 20세기에 출세한 미륵이므로 한층 더 구체화한 것이고, 증산사상에 나타나는 후천선경은 용화세계보다 현대감각에 알맞게 발전,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