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무속의 종교사적 성격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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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의 종교사적 성격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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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의 종교사적 성격

2. 巫俗의 종교사적 성격  현재 한민족의 다수 보편적 基層인 민간층의 종교는 민간신앙이다. 불교 도교 유교 그리스도교 등의 외래종교가 들어와 장구한 역사와 더불어 조직적 체계 밑에서 끈질기게 포교활동을 계속하였지만 외래종교는 언제나 한국의 외적 표층의 종교로 머무는 수준이다. 민간신앙은 민간층의 생활 공동체 속에서 자생하여 생활을 통해 전승되고 있는 자연 그대로의 종교현상이다. 어떤 인위적 목적의식이나 당위성 이전에 이미 민간인의 생활현상이자 종교인 ‘생활 그 자체’인 것이라 생각된다. 동네 입구에 서낭당이 있어 마을을 수호해 주고 집안의 요소마다 家神이 있어서 厄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조상 대대로 전승되어 오는 생활적인 종교적 현상, 그것은 어느 누구의 권유에 의하거나 일부 지방에만 존재하는 특수 현상이 아닌 민간인 누구에게나 있어 왔던 보편적인 민간층의 자연적 사고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민간사고가 집약되어 전문화한 巫를 중심으로 巫俗이 체계화한 것이다.  조직적 종교현상으로서의 巫俗에 대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록은 삼국 유사에 나오는 신라 제2대 남해 왕건의 것으로 기원후 1세기 초가 되고 불교에 대한 기록은 기원후 4세기가 지나서의 일이다. 한국 巫의 기원은 역사적 배경을 청동기시대로 소급시켜보는 경향이 강하다. 巫俗은 이렇게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아득한 상고대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후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基層的 종교현상으로 존재하여 왔다. 한편 巫俗은 한국 전통예술의 근원을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巫俗 속의 巫歌 巫樂 巫舞 祭儀 등 미분화된 종교적 원시예술의 종합체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각각 국문학 국악 민속무용 민속극 등의 분야로 분화발전되어 갈 기틀이 된 것이라 생각되므로, 巫俗은 한국 전통 예술 형성의 시원적 기틀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제 이절 연구사적 검토 1. 儒學者의 관심(고려 말기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비판적인 태도들) 유학자들의 巫俗에 대한 관심은 고려사의 기록을 통해 고려 말기인 13세기 초엽부터 발견되고, 그 관심은 주로 巫俗을 淫祀라 하여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학자들의 비판이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것은 그 비판 과정에서 당시의 巫俗을 비교적 선명하게 기록으로 남긴 귀중한 자료로써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려말 공민왕 때 김자수의 상소문을 통해 別祭라고 말하는 巫祭儀의 성격과 규모, 방식을 전하고 있으며, 특히 고려말 이규보는 老巫篇 詩안에 당시의 巫俗을 상세히 관찰한 보고서를 나기고 있다. 다음으로 조선시대에는, 1790년경 이규경의 ‘巫覡辨證說’을 꼽을 수 있다. 그의 무격변증설은 巫俗을 비판하는 입장이기는 하나 당시 남무를 화랑과 박사라고 창하는 그 명칭상의 어원적 고증을 수록하고 있으며 특히 최영 장군 신당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였다. 2. 서양 기독교 선교사의 연구 한국 巫俗이 근대과학의 방법에 의해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Dallet의 ‘조선 천주교회사’는 서론에서 천연두와 함께 巫俗的 당시 상황을 소개하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선교사인 Humbert가 ‘The korean Mudang and P’ansu(1903)`라는 제목의 연재를 통해 한국 巫의 성격과 기능, 굿하는 신당, 굿의 종류와 방법, 신관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였다. 1910년에 선교사롤 한국에 온 Underwood는 巫俗을 비교종교학 내지는 민족학적 안목으로 관찰한 결과 巫俗을 신학적 안목에서 비교하여 고대의 그리스도교적 하느님 숭배로 樹木崇拜와 洞神祭를 바라보았다. 끝으로 1929년에 선교사 Clark는 한국의 巫俗을 시베리아의 shamanism과 비교하여 같은 계통으로 연구하였다. 3. 한국학자의 초기 연구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개화기를 통해 신학문을 익힌 한국학자들이 巫俗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 후반기부터 이능화, 최남선, 손진태 등이 巫俗을 연구하였는데, 이 시기는 사학자들이 한국고대사 연구방법의 일환으로 역사민속학적 입장에서 巫俗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특히 이능화는 1927년에 ‘조선무속고’를 발표하여 최초의 한국인에 의한 巫俗의 집대성을 이루었다.   4. 일인학자의 연구 이 시기의 巫俗연구는 일인학자에 의해 식민지 지배의 목적으로 조선총독부의 지원에 의해서 연구되었다는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종래의 부분적으로 연구되어 오던 巫俗이 중앙관청의 지원 아래 전국적인 현지조사를 통해 집대성되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5. 1945년 이후의 연구 1945년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내 학자들은 巫俗을 전통적 기층 문화 현상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시기는 종래까지 외국인에 의해 巫俗이 정책적으로 연구된 것과는 달리 국내 학자에 의해 자국의 巫俗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 속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 문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심리학, 종교학 등의 입장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동원되고 있다. 이능화 선생의 문헌학적 연구, 손진태 선생의 역사민속학적 연구 이후 다음과 같은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 하나는 현장조사에 주력하여 그 나름대로 현장자료는 정리해 나가고 있으나 이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못하는 土俗誌的 계열(민속학, 국문학)과 다음 하나는 처음부터 서양의 명제를 끌고 들어와 그 이론체계에다 巫俗을 대입시키려는 事大的 계열(신학, 종교학, 인류학)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巫俗연구는 巫俗의 현장성이 입체적으로 파악되지 않은 채 어느 한 부분만이 평면적으로 조명되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巫俗은 종교적인 현상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巫俗은 기성종교와는 다른 복합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巫俗이 기층문화와 종교의 양면적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巫俗연구가 巫 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 巫俗을 신봉하는 민간인 巫信徒에 대한 조사연구가 전연 없다는 점이다. 巫俗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巫에 대한 巫信徒의 반응과 민간층의 巫俗 수용도 등이 사회적 측면에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제 삼장 연구방법과 자료 두가지 기본입장 – 먼저 앞의 정의에서 본 바와 같이 巫俗을 민간층의 전승적 종교현상으로 보고, 나아가 연구자가 민간인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종교적 현실을 그들의 생활현장으로부터 살펴 그 巫俗현장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것이다. 제 사장 연구과제 첫 번째 과제는 ‘무엇이 巫俗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巫俗의 그 무엇이 한민족의 심성을 이토록 지배해 오고 있으며. 그 ‘무엇’은 또 어떻게 표현되어 오늘에 巫俗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둘째, 巫俗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原型思考는 어떤 것이며. 무엇이 巫俗의 원형사고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巫俗안에 투영되어 求心을 이루는가. 셋째, 이와 같은 巫俗의 원형사고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민간인의 정신형상-민간상은 어떤 것인가. 이상의 제시된 과제는 巫俗의 근원적 의미로부터 민간상의 탐구로 초점이 이어져 인간의 행동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존재의 根源에 대한 물음으로 일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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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의 정의

1. 무속의 정의 巫俗은 민간 층의 巫를 중심으로 하는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으로서 민간신앙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巫라는 용어는 지역별로 그 성격과 명칭에서 차이가 있으므로(예: 중국은 女巫를 巫, 男巫를 覡이라는 뜻으로 사용) 여기에는 巫의 개념 한계를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1) 巫의 정의  여기서 巫라고 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기능을 전제로 한다.  1) 巫가 되는 成巫過程의 시초에 신의 초월적인 靈力을 체득하는 神病체험을 거쳐 神權化한 자라야 한다.(신병을 체험한 降神巫는 신병 자체가 신의 소명에 의한 종교현상으로 인식한다.) 2) 신병을 통해 획득한 신통력을 가지고 신과 만나는 종교적 祭儀로 ‘굿’을 주관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신병을 체득하여 신통력을 획득한 자라도 그 종교적 표현이 되는 제의를 독경식이나 불교식에 의존한다면 巫 본래의 제의인 굿과는 이질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3) 위의 조건을 기반으로 민간인의 종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서 민간층의 종교적인 支恃를 받아 민간층의 종교적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라야 한다.  4) 成巫 초기에 어떤 신을 어떻게 체험하여 그 신을 어떻게 신앙하느냐 하는 對象神의 문제로서, 대체로 山神 七星神 天神 龍神 등 자연신 또는 將軍神 王神 등을 체험하고, 굿도 그 대상을 자연신으로 한다. 2) 巫의 한계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제기한 巫와 覡의 문제는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면 남녀의 구분 없이 모두 巫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女巫의 활동이 주가 되며 박수 같은 男巫가 굿을 해도 女裝으로 여자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巫服을 입는 경우가 있다.) 降神巫와 世襲巫 – 전자는 成巫 초기에 신병체험으로 신의 영력을 얻어 인간의 吉凶禍福 운명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후자는 영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운명을 조상으로부터 이어오는 사제권으로 신에게 所願하는 자들이다. 降神巫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나 世襲巫는 남부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巫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신무와 비슷하게 신병을 체험하고 영력을 얻어 민간층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도 굿을 주관할 능력이 없어 자기들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제의를 하거나 또는 독경식에 의존하는 ‘선무당’류나 ‘명두’‘동자’류 등은 성격상 정통한 강신무(무당, 박수)계로  보지는 않는다. 남부에 분포된 세습무들 중에도 전라도의 ‘단골’과 강원도 남부와 경상도 지역에 분포된 ‘무당’, 그리고 제주도의 ‘심방’ 등은 지역적인 특수성에 기초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일차적인 巫에 포함시킨다. 3) 巫俗의 정의 巫俗은 앞에서 논의된 정의와 성격에 입각한 개념의 巫를 중심으로 한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민간층에서 생활을 통해 전승되는 자연 종교적 현상 즉 민간신앙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것을 종교사적인 입장에서 巫敎라고 할 수는 없다. 巫는 자연 그대로 방치된 원시적 종교현상이어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체계를 가진 巫敎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巫俗이라고 해서 그 종교적 성격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적 문화현상이지만 길흉화복을 비는 종교적인 요소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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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의 정의

1. 무속의 정의 巫俗은 민간 층의 巫를 중심으로 하는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으로서 민간신앙의 한 형태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巫라는 용어는 지역별로 그 성격과 명칭에서 차이가 있으므로(예: 중국은 女巫를 巫, 男巫를 覡이라는 뜻으로 사용) 여기에는 巫의 개념 한계를 분명히 해야할 필요가 있다.  1) 巫의 정의  여기서 巫라고 하는 것은 다음의 네 가지 기능을 전제로 한다.  1) 巫가 되는 成巫過程의 시초에 신의 초월적인 靈力을 체득하는 神病체험을 거쳐 神權化한 자라야 한다.(신병을 체험한 降神巫는 신병 자체가 신의 소명에 의한 종교현상으로 인식한다.) 2) 신병을 통해 획득한 신통력을 가지고 신과 만나는 종교적 祭儀로 ‘굿’을 주관할 수 있는 자라야 한다. 신병을 체득하여 신통력을 획득한 자라도 그 종교적 표현이 되는 제의를 독경식이나 불교식에 의존한다면 巫 본래의 제의인 굿과는 이질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3) 위의 조건을 기반으로 민간인의 종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서 민간층의 종교적인 支恃를 받아 민간층의 종교적 지도자 위치에 있는 자라야 한다.  4) 成巫 초기에 어떤 신을 어떻게 체험하여 그 신을 어떻게 신앙하느냐 하는 對象神의 문제로서, 대체로 山神 七星神 天神 龍神 등 자연신 또는 將軍神 王神 등을 체험하고, 굿도 그 대상을 자연신으로 한다. 2) 巫의 한계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제기한 巫와 覡의 문제는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면 남녀의 구분 없이 모두 巫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女巫의 활동이 주가 되며 박수 같은 男巫가 굿을 해도 女裝으로 여자의 치마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巫服을 입는 경우가 있다.) 降神巫와 世襲巫 – 전자는 成巫 초기에 신병체험으로 신의 영력을 얻어 인간의 吉凶禍福 운명을 조절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후자는 영력과는 상관없이 인간의 운명을 조상으로부터 이어오는 사제권으로 신에게 所願하는 자들이다. 降神巫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나 世襲巫는 남부지역에 주로 분포되어 巫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신무와 비슷하게 신병을 체험하고 영력을 얻어 민간층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면서도 굿을 주관할 능력이 없어 자기들 나름의 임기응변으로 제의를 하거나 또는 독경식에 의존하는 ‘선무당’류나 ‘명두’‘동자’류 등은 성격상 정통한 강신무(무당, 박수)계로  보지는 않는다. 남부에 분포된 세습무들 중에도 전라도의 ‘단골’과 강원도 남부와 경상도 지역에 분포된 ‘무당’, 그리고 제주도의 ‘심방’ 등은 지역적인 특수성에 기초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에 일차적인 巫에 포함시킨다. 3) 巫俗의 정의 巫俗은 앞에서 논의된 정의와 성격에 입각한 개념의 巫를 중심으로 한 민간층의 전승적인 종교적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민간층에서 생활을 통해 전승되는 자연 종교적 현상 즉 민간신앙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것을 종교사적인 입장에서 巫敎라고 할 수는 없다. 巫는 자연 그대로 방치된 원시적 종교현상이어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체계를 가진 巫敎라고 부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巫俗이라고 해서 그 종교적 성격이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전통적 문화현상이지만 길흉화복을 비는 종교적인 요소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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