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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중용 2
6. 君子素其位而行하고, 不願乎其外하니. 素富貴 行乎富貴하고, 素貧賤 行乎貧賤하니라(14장). *단어풀이 素(소) : 여기서는 ‘卽’(처하다)의 뜻 *직역 군자는 자기의 위치에 처하여 행하고 자기의 바깥에서 원하지 않는다. 부귀에 처하여서는 부귀에서 행하고 빈천에 처하여서는 빈천에서 행한다. *해설 時中의 개념을 잘 말해주고 있다. 자기의 처지에 처하여서 자기의 일을 하는 것, 그것이 군자가 지녀야 할 미덕이다. 그리하여 기쁠 때에 기뻐하고 슬플 때에 슬퍼할 줄 아는 中和를 실행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주의 운행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따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7. 誠者는 天之道也오 誠之者는 人之道也다(20장). *단어풀이 中(중) : 맞다. 之(지) : (목표에) 이르다. *직역 정성 그것은 하늘의 道이며 정성에 이르는 그것은 인간의 道이다. *해설 誠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온전한 성실성이나 정성으로서 인간생활 안에 현존하는 것으로 일종의 희생을 수반하며 인간이나 사물의 완성으로 인도하고 神의 영역에 까지 스며들어 갈 수 있는 진실성이다. 朱喜는 誠을 진실하여 헛됨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는 곧 하늘의 이치이다. 또한 誠에 이르려는 것은 진실하여 헛됨이 없는 것에 이르려 함이니 사람의 길 또한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정성스러운 사람은 힘들이거나 생각하지 않아도 맞으며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조용히 따름은 道에 맞나니 이는 곧 聖人의 道와 맞는 것이다. 왜냐하면 聖人의 德은 하늘의 이치인데 하늘의 이치는 곧 진실하여 헛됨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8. 唯天下至誠이아 爲能盡其性이니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이오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이다(22장). *직역 오직 하늘 아래에 지극한 정성이라야. 그 본성에 능히 다하는 것이니 그 본성에 능히 다함은 즉 인간의 본성을 능히 다함이요 인간의 본성을 능히 다함은 즉 사물의 본성을 능히 다함이다. *해설 朱喜는 사람이나 사물 모두는 같지만 단 부여된 형성하는 氣가 서로 같지 않아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의 본성을 아는 것은 곧 남의 본성을 아는 것이 되고 더 나아가 모든 사물의 본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알게 됨을 통해서 나는 천지의 변화와 육성에 참여하게 된다. 참여한다는 것은 천지와 함께 나는 셋이 됨을 말하려는 것이다. 9. 是故로 君子는 動而世爲天下道니 行而世爲天下法하여 言而世爲天下則이라(29장). *단어풀이 道(도) : 여기서는 법칙을 말함 法(법) : 제도, 行의 본보기 *직역 그러므로 君子는 행위으로서 법칙을 만들고 행위로서 대대로 천하의 제도를 만들며 말씀으로서 대대로 천하의 준칙을 만드니라. *해설 유가에서는 은둔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를 본령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자도 周遊天下라는 불휴의 생애를 살았다. 활동하면 천하의 지도자가 되며 그의 언행은 곧장 법칙이된다는 것이다. 10. 詩曰, 德輕如毛라하니 毛猶宥倫이어니와 上天之載無聲無臭아 至矣니라(33장). *단어풀이 詩(시) : 詩經을 말함. 倫(륜) : ‘비교하다’라는 의미로 쓰임 無聲無臭는 不賭不聞이의 경지와 같다. 無聲無臭의 無는 절대 無가 아니라 上天의 속성으로서의 無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 上天은 首章의 天命과 相應하여 中庸의 결미를 맺는다. *직역 詩에 이르기를 德은 털같이 가볍다고 하니 털은 오히려 비교할 수는 있지만 하늘 위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느니 지극하니라. *해설 詩經에 文王의 德도 털같이 가볍다고 했다. 文王의 德이 인간 사회에서는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우주 행정을 시행하는 上天의 德에 비하면 한오라기 털에 불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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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Ⅶ. 본문강독 1. 天命之爲性이고, 率性之爲道이며, 修道之爲敎이다(1장). *단어풀이 率(솔) : 따르다 *직역 하늘의 명한 것, 그것을 일러 性이라 하고, 性대로 따르는 그것을 일러 道라 하고, 道를 닦는 그것을 일러 敎라 한다. 2. 喜怒哀樂之未發은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은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1장). *단어풀이 皆(개) : 모두. 達(달) : 통할, 이를 *직역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일컽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和라고 일컬으니 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道라는 것이니라. *해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은 情이요. 그것을 발하지 않은 것이 性이다. 한쪽에 치우치거자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을 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며 어긋나는 것이 없는 것을 和라고 일컽는다. 3. 子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이 久矣니라(3장). *단어 풀이 至(지) : 지극할, 이를. 鮮(선) : 고울, 적을(少-거의 없다). 久(구) : 오랠. 矣(의) : 단정, 한정의 어조사. *직역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中庸은 지극하구나, 그러나 능력있는 백성이 적은지 오래니라. *해설 지나치면 中을 잃고, 미치지 못하면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고로 오직 中庸의 德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이 같이 얻은 바로서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없지만 세상의 가르침이 약해지고 백성이 이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있는 자가 드물다. 4.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대,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니라(12장). *단어풀이 費(비) : 원래 用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廣(넓다)의 뜻. 焉(언) : 단정 어조사. *직역 君子의 道는 광대하고도 은밀하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알 수 있대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해설 ‘道’라는 것은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에 가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그러므로 그 사소한 데에 대하여서는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 위대한 데에 가서는 군자라 할 지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은 ‘中庸의 道’가 알아 듣기 힘들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5. 道不遠人이니, 人之爲道而遠人하면, 不可以爲道이니라(13장). *단어풀이 遠(달) : 형용사일 때는 ‘멀다’의 뜻, 동사일 때는 ‘멀리하다’의 뜻 爲(위) : 여기서는 ‘여기다’, ‘일컫다’의 뜻 *직역 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사람이 道를 하여도 (道가) 사람을 멀리하면 이로써 道라고 할 수 없다. *해설 유교의 道는 人道이다. 따라서 道는 결코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며 인간에서 떨어진 道는 天道이지 人道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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Ⅶ. 본문강독 1. 天命之爲性이고, 率性之爲道이며, 修道之爲敎이다(1장). *단어풀이 率(솔) : 따르다 *직역 하늘의 명한 것, 그것을 일러 性이라 하고, 性대로 따르는 그것을 일러 道라 하고, 道를 닦는 그것을 일러 敎라 한다. 2. 喜怒哀樂之未發은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은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1장). *단어풀이 皆(개) : 모두. 達(달) : 통할, 이를 *직역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일컽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和라고 일컬으니 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道라는 것이니라. *해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은 情이요. 그것을 발하지 않은 것이 性이다. 한쪽에 치우치거자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을 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며 어긋나는 것이 없는 것을 和라고 일컽는다. 3. 子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이 久矣니라(3장). *단어 풀이 至(지) : 지극할, 이를. 鮮(선) : 고울, 적을(少-거의 없다). 久(구) : 오랠. 矣(의) : 단정, 한정의 어조사. *직역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中庸은 지극하구나, 그러나 능력있는 백성이 적은지 오래니라. *해설 지나치면 中을 잃고, 미치지 못하면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고로 오직 中庸의 德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이 같이 얻은 바로서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없지만 세상의 가르침이 약해지고 백성이 이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있는 자가 드물다. 4.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대,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니라(12장). *단어풀이 費(비) : 원래 用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廣(넓다)의 뜻. 焉(언) : 단정 어조사. *직역 君子의 道는 광대하고도 은밀하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알 수 있대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해설 ‘道’라는 것은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에 가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그러므로 그 사소한 데에 대하여서는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 위대한 데에 가서는 군자라 할 지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은 ‘中庸의 道’가 알아 듣기 힘들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5. 道不遠人이니, 人之爲道而遠人하면, 不可以爲道이니라(13장). *단어풀이 遠(달) : 형용사일 때는 ‘멀다’의 뜻, 동사일 때는 ‘멀리하다’의 뜻 爲(위) : 여기서는 ‘여기다’, ‘일컫다’의 뜻 *직역 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사람이 道를 하여도 (道가) 사람을 멀리하면 이로써 道라고 할 수 없다. *해설 유교의 道는 人道이다. 따라서 道는 결코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며 인간에서 떨어진 道는 天道이지 人道가 아니다.
중용
Ⅶ. 본문강독 1. 天命之爲性이고, 率性之爲道이며, 修道之爲敎이다(1장). *단어풀이 率(솔) : 따르다 *직역 하늘의 명한 것, 그것을 일러 性이라 하고, 性대로 따르는 그것을 일러 道라 하고, 道를 닦는 그것을 일러 敎라 한다. 2. 喜怒哀樂之未發은 謂之中이오 發而皆中節은 謂之和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1장). *단어풀이 皆(개) : 모두. 達(달) : 통할, 이를 *직역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中이라고 일컽고, 나타나서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和라고 일컬으니 中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달한 道라는 것이니라. *해설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은 情이요. 그것을 발하지 않은 것이 性이다. 한쪽에 치우치거자 의지하는 것이 없는 것을 中이라 이르고, 발하여 모두 절도에 맞으며 어긋나는 것이 없는 것을 和라고 일컽는다. 3. 子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이 久矣니라(3장). *단어 풀이 至(지) : 지극할, 이를. 鮮(선) : 고울, 적을(少-거의 없다). 久(구) : 오랠. 矣(의) : 단정, 한정의 어조사. *직역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中庸은 지극하구나, 그러나 능력있는 백성이 적은지 오래니라. *해설 지나치면 中을 잃고, 미치지 못하면 이르지 못하는 것이니 고로 오직 中庸의 德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또한 사람이 같이 얻은 바로서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없지만 세상의 가르침이 약해지고 백성이 이를 행하지 않기 때문에 능력있는 자가 드물다. 4.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대,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니라(12장). *단어풀이 費(비) : 원래 用과 같은 뜻이나 여기서는 廣(넓다)의 뜻. 焉(언) : 단정 어조사. *직역 君子의 道는 광대하고도 은밀하다.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가히 알 수 있대 그 지극한 데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이라 할지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해설 ‘道’라는 것은 그 시작은 사소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그 끝에 가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그러므로 그 사소한 데에 대하여서는 부부의 어리석음으로도 알 수 있지만 그 위대한 데에 가서는 군자라 할 지라도 알지 못하는 바가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은 ‘中庸의 道’가 알아 듣기 힘들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5. 道不遠人이니, 人之爲道而遠人하면, 不可以爲道이니라(13장). *단어풀이 遠(달) : 형용사일 때는 ‘멀다’의 뜻, 동사일 때는 ‘멀리하다’의 뜻 爲(위) : 여기서는 ‘여기다’, ‘일컫다’의 뜻 *직역 道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사람이 道를 하여도 (道가) 사람을 멀리하면 이로써 道라고 할 수 없다. *해설 유교의 道는 人道이다. 따라서 道는 결코 인간에게서 떨어질 수 없으며 인간에서 떨어진 道는 天道이지 人道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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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관하여
제사의 관하여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고조 할아버지까지 일년에 열네댓번 제사를 지내는 집안에서 커 온 나로서는 제사에 대해 이렇다 할 반감도 호감도 가지지 않았었고 그저 지내야 할 것으로 따르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제사에 대해서 알고 난 후부터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했던 제사에 큰 의의를 두게 되었다. 특히 이번 추석 명절에 4군데의 제사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나의 제사에 대한 의견을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제사가 시작하는 시간에 문제가 있다. 아버지 말로써는 하루가 시작하는 제일 이른 시각인 12시를 기해서 제사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정말 효심과 정성에서 드리는 제사라면 그 시간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즉 평소의 직장 생활을 하는 삼촌의 경우 제사에 한 번 참여하고 나면 그 다음날 회사일을 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제관들이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사 시간을 6시에서 9시 사이에 지냄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물이다. 제물은 제사를 지내는 대상인 조상이 좋아했던 음식을 가지고 지낸다. 그러나 요즘 와서 제물의 값이 엄청 비싸고 이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든다. 또한 제사가 끝나고 친족끼리의 음복도 무시할 수 없으므로 제물을 요즘 입맛에 맞는,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마련함이 적당하다. 셋째, 제사의 과정 중에 우리 집의 경우는 합문을 하고 약 5분간 엎드려 있는데 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말로는 이러는 동안에 조상께서 오셔서 밥을 7 숟가락 먹을 동안 그러는 것이라 하시는 데 추효보본의 관점에서는 그리고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는 이를 다음에 이어지는 묵념으로 대처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넷째, 우리집의 경우 증조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경우에 축을 읊는 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로부터 무슨 내용인지 알게 되었다. 따라서 축을 읊을 때는 한문으로 하기보다는 한글로 제사의 대상에 대해 알기 쉽게 읽는다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조상을 상기 시키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제사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서술해 보았다. 제사는 평상시 만나 볼 수 없는 친족들과 만남을 중개 해주고 조상에 대한 얘기를 함으로써 그분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제사를 준비함에 있어 그 정성과 효성을 볼 때 결코 금지할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나 현대적 의미를 살펴 볼 때 그의 불합리한 점이나 모순점을 고쳐 나간다면 이 시대에 아름답고 훌륭한 우리의 전통 문화로써 자리잡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