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자아 완성을 위한 수련방법 – 성경신의 실천도덕, 주문과 영부

2) 자아 완성을 위한 수련방법 (1) 성경신의 실천도덕 東學에서 守心正氣가 侍天主의 요체라고 한다면 誠․敬․信은 守心正氣하는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다.  수운은 「동경대전」“논학문”에서 “우리 道는 그리 저절로 되는 것이니, 하늘 造化의 참된 그 마음을 고이고이 삼가지켜 이를 공경하고 믿음으로써 그 기운을 바로하며, 그 덕성을 좇고 그 가르침을 받으면 되는 것이 자연한 가운데서 나오는 법이다.”고 하여 侍天主의 신앙 태도로서 誠․敬․信을 매우 강조하였다.1) 誠敬은 靈符나 造化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의 병에 써 보았더니 어떤 사람은 낫고 어떤 사람은 낫지 않았다.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그 원인을 잘 살펴보니 정성을 다하여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사람은 번번이 효력이 있고 도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효력이 없었다.  이것은 영부를 받는 사람의 성경에 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2) 이렇게 그 사람의 誠敬에 따라 그 효력은 차이가 있다.  이런 誠敬은 어떤 윤리적인 誠敬이 아니라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는 절대적 존재에게 순종하는 유한자의 태도를 말하는 종교적 誠敬이다. “오는 사람 曉諭해서 三七字 전해주니 無爲而化 아닐런가”3) 이렇게 ‘한울님’의 섭리에 따라 무리없이 잘 조화된 하나의 세계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誠敬을 다하여 ‘한울님’을 모셔야 한다.  誠․敬․信의 실천윤리를 잘 지켜 내면 無極大道를 얻고 君子가되어 道成德立할 수 있다고 東學은 강조하였다.  이 誠․敬․信은 ‘한울님’을 모시는 올바른 태도인 동시에 수도의 방법을 가리킨 것이다.4) ‘한울님’을 잘 모실 수 있는 글이 곧 三七字(21字)로 된 呪文이다.   (2) 주문과 영부 수운은 1860년 4월 5일에 天道를 받았다.  이것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뜻이다.   “나로부터 이 靈符를 받아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해 내고 나로부터 呪文을 받아 사람들을 가르쳐서 나를 위하게 하여라! 그러면 너도 長生하여 천하에 포덕하게 될 것이다.”5) 수운은 ‘한울님’으로부터 직접 靈符와 呪文을 받았다.  그는 이 靈符를 받아 스스로 먹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시험해 보았다.  처음에는 불사약(不死藥)이라고 할 정도로 효능이 있었으나, 후에는 ‘한울님’께 대한 지극한 정성이 없으면 효능이 없다고 하였다.  즉 靈符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울님’에 대한 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靈符와 呪文이 조화를 부릴 수 있는 같은 것으로 여겼으나, ‘한울님’께 대한 공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뒤에는 주문에 대한 생각을 달리했다.  呪文은 그 차제로 효능이 있는 어떤 呪術的인 것이 아니라 ‘한울님’을 위한 글이며, 이 글을 통해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기 때문에 어떤 효능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믿게 되었다.6) 수운은 처음에 呪文을 받았다고 말하고 뒤에는 呪文을 지었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보아 呪文의 내용이 어느 정도 수정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초기의 呪文은 청원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의 呪文은 ‘天靈을 몸에 내리게 하는 글’(降靈之文)이었다.  그런데 靈符는 바로 이 降靈의 경지에서만 백지에 도가 그려낼 수 있다.  이렇게 呪文이야말로 造化를 부릴 수 있게 하고 靈符도 만들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것이다.7)  降靈을 위해서는 呪文을 마음속으로 읽기보다 입으로 외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여, 심독보다는 음률이 따르는 구속을 시켰다.   차츰 수운은 降靈보다 ‘한울님’의 覺得을 강조하였다.  呪文은 ‘한울님을 위한 글’(至爲天主之字)이라고 믿었다.  이때의 구송은 초기와는 달리 어떤 직접적인 실제의 목적이 아니라 심적인 태도를 확립하기 위한 구송이었다.   그러나 청원을 주로 하는 초기에 있어서도, 覺得을 추구하던 후기에 있어서도 呪文은 변함없이 종교적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呪文의 내용상 변화는 초학주문과 본주문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8) “爲天主顧我情 永世不忘萬事宜” 여기서 ‘한울님을 위한다는 말은 제물을 갖춘 제사와 같은 어감이 풍긴다.  “내사정을 돌봐 주신다”는 말 역시 어떤 물질적인 청원이 나타난다.   “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수운은 조화를 無爲而化로 해석했다.  無爲而化는 ‘한울님’의 무한한 德化, 즉 ‘한울님’의 섭리다.  이러한 섭리를 체득한다는 것은 어떤 물적 체득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만사가 저절로 깨달아진다는 말이 주목된다.  여기에 종교의 목적을  진리의 각득에 두고 있다는 것이 잘 나타난다.   이렇게 誠敬으로 呪文을 구송하는 東學의 수행 목적은 救靈이나 祈福이 아니라, 인간 개조에 있다.  즉 모든 사람이 도를 얻어 군자․성인이 되어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상적 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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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사상

(3) 人乃天思想 최제우가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했고,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강조했다면, 손병희는 人乃天의 원리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 인본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힘썼다.   그는 하늘(天)과 인간(人)의 관계를 말하면서 “天이 있으면 내가 없을 수 없고, 天이 없으면 매가 있을 수 없다.” 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天․地․人을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만물이 생성될 때 그 본성은 ‘하늘’에서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 그의 이런 생각은 天道敎의 宗旨2)와 모순되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손병희는 性心을 바탕으로 인간 본질을 정의하고, 侍天主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손병희는 “무체법경”에서 인간의 근원을 인즉천(人卽天)의 논리로 무형인 성(性)과 심(心)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하늘’에 연결시켰다.   “性이 闔則爲萬理萬事之原素요 性이 開則爲萬理萬事之良鏡이니 萬里萬事 入鏡中 能運用曰 心이라 心믄 卽神이요 神은 卽氣運所致니라” 性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萬理萬事에 적용되는 것으로 性은 氣가 작용하기 이전 상태고, 心은 氣가 작용하는 상태다.  性은 우주 만물의 근본 바탕이고, 心은 곧 신으로서 기운의 소치라 하여 ‘人乃天’을 유교적 우주관으로 합리화하였다.  그리고 기운의 시초를 ‘나’라고 하여 사람의 무궁성을 언급하면서3), 인간성의 무궁함이 그 본질임을 들어 성심(性心)의 수양을 의무로 강조하였다.   또한 侍天主의 해석에서 인간성의 본질 규명을 시도하였다.  ‘侍天主’를 각천(覺天)으로 풀이4)하여 侍天의 도덕적 수련 이전에 먼저 자기 마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성의 본질을 깨달아 자기의 심적(心的) 덕화(德化)에 함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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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사상

(3) 人乃天思想 최제우가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했고,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강조했다면, 손병희는 人乃天의 원리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 인본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힘썼다.   그는 하늘(天)과 인간(人)의 관계를 말하면서 “天이 있으면 내가 없을 수 없고, 天이 없으면 매가 있을 수 없다.” 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天․地․人을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만물이 생성될 때 그 본성은 ‘하늘’에서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 그의 이런 생각은 天道敎의 宗旨2)와 모순되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손병희는 性心을 바탕으로 인간 본질을 정의하고, 侍天主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손병희는 “무체법경”에서 인간의 근원을 인즉천(人卽天)의 논리로 무형인 성(性)과 심(心)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하늘’에 연결시켰다.   “性이 闔則爲萬理萬事之原素요 性이 開則爲萬理萬事之良鏡이니 萬里萬事 入鏡中 能運用曰 心이라 心믄 卽神이요 神은 卽氣運所致니라” 性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萬理萬事에 적용되는 것으로 性은 氣가 작용하기 이전 상태고, 心은 氣가 작용하는 상태다.  性은 우주 만물의 근본 바탕이고, 心은 곧 신으로서 기운의 소치라 하여 ‘人乃天’을 유교적 우주관으로 합리화하였다.  그리고 기운의 시초를 ‘나’라고 하여 사람의 무궁성을 언급하면서3), 인간성의 무궁함이 그 본질임을 들어 성심(性心)의 수양을 의무로 강조하였다.   또한 侍天主의 해석에서 인간성의 본질 규명을 시도하였다.  ‘侍天主’를 각천(覺天)으로 풀이4)하여 侍天의 도덕적 수련 이전에 먼저 자기 마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성의 본질을 깨달아 자기의 심적(心的) 덕화(德化)에 함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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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천사상

(3) 人乃天思想 최제우가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했고,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강조했다면, 손병희는 人乃天의 원리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고 인본주의의 사회적 실천에 힘썼다.   그는 하늘(天)과 인간(人)의 관계를 말하면서 “天이 있으면 내가 없을 수 없고, 天이 없으면 매가 있을 수 없다.” 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天․地․人을 상호 불가분의 관계로 보았다.  왜냐하면 사람이나 만물이 생성될 때 그 본성은 ‘하늘’에서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 그의 이런 생각은 天道敎의 宗旨2)와 모순되었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손병희는 性心을 바탕으로 인간 본질을 정의하고, 侍天主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손병희는 “무체법경”에서 인간의 근원을 인즉천(人卽天)의 논리로 무형인 성(性)과 심(心)으로 보아 다음과 같이 ‘하늘’에 연결시켰다.   “性이 闔則爲萬理萬事之原素요 性이 開則爲萬理萬事之良鏡이니 萬里萬事 入鏡中 能運用曰 心이라 心믄 卽神이요 神은 卽氣運所致니라” 性心은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萬理萬事에 적용되는 것으로 性은 氣가 작용하기 이전 상태고, 心은 氣가 작용하는 상태다.  性은 우주 만물의 근본 바탕이고, 心은 곧 신으로서 기운의 소치라 하여 ‘人乃天’을 유교적 우주관으로 합리화하였다.  그리고 기운의 시초를 ‘나’라고 하여 사람의 무궁성을 언급하면서3), 인간성의 무궁함이 그 본질임을 들어 성심(性心)의 수양을 의무로 강조하였다.   또한 侍天主의 해석에서 인간성의 본질 규명을 시도하였다.  ‘侍天主’를 각천(覺天)으로 풀이4)하여 侍天의 도덕적 수련 이전에 먼저 자기 마음이 곧 ‘하늘’이라는 인간성의 본질을 깨달아 자기의 심적(心的) 덕화(德化)에 함써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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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여천사상

(2) 사인여천사상 事人如天의 중심 사상은 人本主義라고 하겠다.  人本主義는 이미 최제우 당시에 東學의 이념으로 체계화되었지만 일반 교도들의 실생활에 구체화된 것은 최시형의 시기에 이르러서다.  최제우가 侍天主思想으로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함으로써 人間觀을 세속화했다면,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근대적 人間觀을 세속화했다.1) 이러한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가 뒷받침 해주어야 했다. 1878년 7월에 해월의 이름으로 처음 접(接)을 열었다.  이 접은 교리 토론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많은 교리 문제가 토의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侍字의 義’가 문제되었다.   “여러분은 侍字의 뜻을 아는가? 侍字를 어떻게 해석함이 可한가? 사람이 胎內에 생길 때부터 侍字의 義가 성립된다고 봄이 可한가? 落地 이후에 처음으로 侍字의 義가 성립되는가? 入道하여 降靈이 되는 날에 侍字의 義가 생긴다고 함이 可한가? 여러분은 이 侍字의 義를 연구하라.”2) 이 글에서 묻는 태도에 이미 그 해답의 방향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수운은 교인들에게 ‘한울님’을 모시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월이 사람은 사람으로 생겨날 때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이것을 시인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불 수 있다.  적어도 侍字를 확대 해석하려는 의도가 물음 자체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다.   “내 또한 五臟이 잇거니 어찌 物欲을 몰으리요마는 내 이를 하지 안는 것은 ‘한울’을 養하지 못할가 두려워하노라……제군의 행위를 본즉 自尊하는 자 많으니 可嘆할 일이로다 내 또한 세상사람이어니 어찌 이런 마음이 없겠느냐마는 내 이를 하지 아니함은 한울을 養 하지 못할가 두려워함이니라……그럼으로 내 평생에 外飾을 피하고 내실을 主도하는 것은 오로지 ‘한울’을 養함에 유감이 없기를 기함이니라.” 여기서 ‘한울님을 양(養)한다’고 한 것은 ‘각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 人卽天의 논리에 부합된다.  ‘사람은 본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  그는 人卽天을 事人如天으로 풀이하여 養天主設을 정립하였다.  따라서 養天主는 ‘한울님의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 최시형의 養天主는 인간 존엄성을 강조한 생성 철학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천인 관계를 天主恭養, 待人接物, 以天食天의 설법으로 事人如天思想을 체계화했다.  이런 해월의 人間觀은 인간 평등과 인간 존중 사상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인간 존중 사상은 그의 법설 “十毋天”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서 天字를 人字로 대체해서 해석하면 그의 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一 毋欺天 – 사람을 속이지 말라.   二 毋慢天 – 사람을 게으르게 하지 말라.   三 毋傷天 – 사람을 속상하게 하지 말라.   四 毋亂天 – 사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五 毋夭天 – 사람을 요절하게 하지 말라.   六 毋汚天 – 사람을 더럽히지 하지 말라.   七 毋餒天 – 사람을 굶주리게 하지 말라   八 毋壞天 – 사람을 좌절하게 하지 말라.   九 毋厭天 – 사람을 미워 하지 말라.   十 毋屈天 – 사람을 비굴하게 하지 말라.” 이렇게 볼 때 侍天主思想 안에 내포되어 있는 人本主義的 요소는 최시형에 의해 人卽天思想과 事人如天思想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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