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사인여천사상

(2) 사인여천사상 事人如天의 중심 사상은 人本主義라고 하겠다.  人本主義는 이미 최제우 당시에 東學의 이념으로 체계화되었지만 일반 교도들의 실생활에 구체화된 것은 최시형의 시기에 이르러서다.  최제우가 侍天主思想으로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함으로써 人間觀을 세속화했다면,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근대적 人間觀을 세속화했다.1) 이러한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가 뒷받침 해주어야 했다. 1878년 7월에 해월의 이름으로 처음 접(接)을 열었다.  이 접은 교리 토론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많은 교리 문제가 토의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侍字의 義’가 문제되었다.   “여러분은 侍字의 뜻을 아는가? 侍字를 어떻게 해석함이 可한가? 사람이 胎內에 생길 때부터 侍字의 義가 성립된다고 봄이 可한가? 落地 이후에 처음으로 侍字의 義가 성립되는가? 入道하여 降靈이 되는 날에 侍字의 義가 생긴다고 함이 可한가? 여러분은 이 侍字의 義를 연구하라.”2) 이 글에서 묻는 태도에 이미 그 해답의 방향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수운은 교인들에게 ‘한울님’을 모시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월이 사람은 사람으로 생겨날 때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이것을 시인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불 수 있다.  적어도 侍字를 확대 해석하려는 의도가 물음 자체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다.   “내 또한 五臟이 잇거니 어찌 物欲을 몰으리요마는 내 이를 하지 안는 것은 ‘한울’을 養하지 못할가 두려워하노라……제군의 행위를 본즉 自尊하는 자 많으니 可嘆할 일이로다 내 또한 세상사람이어니 어찌 이런 마음이 없겠느냐마는 내 이를 하지 아니함은 한울을 養 하지 못할가 두려워함이니라……그럼으로 내 평생에 外飾을 피하고 내실을 主도하는 것은 오로지 ‘한울’을 養함에 유감이 없기를 기함이니라.” 여기서 ‘한울님을 양(養)한다’고 한 것은 ‘각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 人卽天의 논리에 부합된다.  ‘사람은 본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  그는 人卽天을 事人如天으로 풀이하여 養天主設을 정립하였다.  따라서 養天主는 ‘한울님의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 최시형의 養天主는 인간 존엄성을 강조한 생성 철학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천인 관계를 天主恭養, 待人接物, 以天食天의 설법으로 事人如天思想을 체계화했다.  이런 해월의 人間觀은 인간 평등과 인간 존중 사상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인간 존중 사상은 그의 법설 “十毋天”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서 天字를 人字로 대체해서 해석하면 그의 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一 毋欺天 – 사람을 속이지 말라.   二 毋慢天 – 사람을 게으르게 하지 말라.   三 毋傷天 – 사람을 속상하게 하지 말라.   四 毋亂天 – 사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五 毋夭天 – 사람을 요절하게 하지 말라.   六 毋汚天 – 사람을 더럽히지 하지 말라.   七 毋餒天 – 사람을 굶주리게 하지 말라   八 毋壞天 – 사람을 좌절하게 하지 말라.   九 毋厭天 – 사람을 미워 하지 말라.   十 毋屈天 – 사람을 비굴하게 하지 말라.” 이렇게 볼 때 侍天主思想 안에 내포되어 있는 人本主義的 요소는 최시형에 의해 人卽天思想과 事人如天思想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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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여천사상

(2) 사인여천사상 事人如天의 중심 사상은 人本主義라고 하겠다.  人本主義는 이미 최제우 당시에 東學의 이념으로 체계화되었지만 일반 교도들의 실생활에 구체화된 것은 최시형의 시기에 이르러서다.  최제우가 侍天主思想으로 ‘한울님’을 인간에 내면화함으로써 人間觀을 세속화했다면, 최시형은 事人如天思想으로 인간 존엄성을 근대적 人間觀을 세속화했다.1) 이러한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가 뒷받침 해주어야 했다. 1878년 7월에 해월의 이름으로 처음 접(接)을 열었다.  이 접은 교리 토론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때 많은 교리 문제가 토의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侍字의 義’가 문제되었다.   “여러분은 侍字의 뜻을 아는가? 侍字를 어떻게 해석함이 可한가? 사람이 胎內에 생길 때부터 侍字의 義가 성립된다고 봄이 可한가? 落地 이후에 처음으로 侍字의 義가 성립되는가? 入道하여 降靈이 되는 날에 侍字의 義가 생긴다고 함이 可한가? 여러분은 이 侍字의 義를 연구하라.”2) 이 글에서 묻는 태도에 이미 그 해답의 방향이 암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수운은 교인들에게 ‘한울님’을 모시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해월이 사람은 사람으로 생겨날 때부터 ‘한울님’을 모시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가 이것을 시인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불 수 있다.  적어도 侍字를 확대 해석하려는 의도가 물음 자체에 분명히 암시되어 있다.   “내 또한 五臟이 잇거니 어찌 物欲을 몰으리요마는 내 이를 하지 안는 것은 ‘한울’을 養하지 못할가 두려워하노라……제군의 행위를 본즉 自尊하는 자 많으니 可嘆할 일이로다 내 또한 세상사람이어니 어찌 이런 마음이 없겠느냐마는 내 이를 하지 아니함은 한울을 養 하지 못할가 두려워함이니라……그럼으로 내 평생에 外飾을 피하고 내실을 主도하는 것은 오로지 ‘한울’을 養함에 유감이 없기를 기함이니라.” 여기서 ‘한울님을 양(養)한다’고 한 것은 ‘각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하는 人卽天의 논리에 부합된다.  ‘사람은 본래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으로 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  그는 人卽天을 事人如天으로 풀이하여 養天主設을 정립하였다.  따라서 養天主는 ‘한울님의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3) 최시형의 養天主는 인간 존엄성을 강조한 생성 철학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과 천인 관계를 天主恭養, 待人接物, 以天食天의 설법으로 事人如天思想을 체계화했다.  이런 해월의 人間觀은 인간 평등과 인간 존중 사상이 주조를 이룬다. 이러한 인간 존중 사상은 그의 법설 “十毋天”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서 天字를 人字로 대체해서 해석하면 그의 사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 一 毋欺天 – 사람을 속이지 말라.   二 毋慢天 – 사람을 게으르게 하지 말라.   三 毋傷天 – 사람을 속상하게 하지 말라.   四 毋亂天 – 사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五 毋夭天 – 사람을 요절하게 하지 말라.   六 毋汚天 – 사람을 더럽히지 하지 말라.   七 毋餒天 – 사람을 굶주리게 하지 말라   八 毋壞天 – 사람을 좌절하게 하지 말라.   九 毋厭天 – 사람을 미워 하지 말라.   十 毋屈天 – 사람을 비굴하게 하지 말라.” 이렇게 볼 때 侍天主思想 안에 내포되어 있는 人本主義的 요소는 최시형에 의해 人卽天思想과 事人如天思想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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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사상

1) 人本主義的 인간관 (1) 侍天主思想 인간성 본질에 대한 최제우의 지론은 ‘侍天主思想’에 집약되어 있다.  侍天主는 人間과 神의 관계를 규정해 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侍天主란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다는 의미다.  그리고 侍天主의 경지에 오르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侍天主의 주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을 신적 위치로 격상시켜 놓았고,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인간은 神的품성을 소유하고 神性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侍天主에 대한 해석은 최제우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었다는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生不忘 萬事知”의 21字 呪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최제우는 이 呪文을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 하였다.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인 이 21字 呪文 속에서 侍天主의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侍天主 造化定” 여섯 글자 가운데 ‘侍’字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다.   최제우는 呪文을 해석할 때 다음과 같이 侍天主의 ‘侍’字를 3단계로 정의했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으로는 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氣化가 있는 경지에 합일하여 한치도 옮기지 않는 것이다.  神靈은 내적 본성이고, 氣化는 다른 존재들과의 외적인 본래의 관계이며, 不移는 운동이며 실천이다.  안으로는 하늘과 합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과 자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데 한치도 어그러짐이 없이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불이는 이를 방해하고 저지하는 모든 사상․경향․힘들에 대한 투쟁이다.  안으로 신령한 ‘한울님’이 뚜렷하게 있고, 밖으로는 그 기운이 흘러 넘쳐야 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생활에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侍天主’한다는 것은 안으로는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밖으로는 모든 존재들의 심층을 연결하는 기운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도 그러한 경계에서 잠깐이라도, 한치도 옮김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侍’는 사람의 마음이 의지적으로 ‘한울님’과 일체 되고 ‘한울님’의 조화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侍天主’는 인간이 天人合一의 個全一體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무궁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해진다는 同歸一體를 의미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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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사상

1) 人本主義的 인간관 (1) 侍天主思想 인간성 본질에 대한 최제우의 지론은 ‘侍天主思想’에 집약되어 있다.  侍天主는 人間과 神의 관계를 규정해 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侍天主란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다는 의미다.  그리고 侍天主의 경지에 오르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侍天主의 주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을 신적 위치로 격상시켜 놓았고,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인간은 神的품성을 소유하고 神性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侍天主에 대한 해석은 최제우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었다는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生不忘 萬事知”의 21字 呪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최제우는 이 呪文을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 하였다.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인 이 21字 呪文 속에서 侍天主의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侍天主 造化定” 여섯 글자 가운데 ‘侍’字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다.   최제우는 呪文을 해석할 때 다음과 같이 侍天主의 ‘侍’字를 3단계로 정의했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으로는 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氣化가 있는 경지에 합일하여 한치도 옮기지 않는 것이다.  神靈은 내적 본성이고, 氣化는 다른 존재들과의 외적인 본래의 관계이며, 不移는 운동이며 실천이다.  안으로는 하늘과 합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과 자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데 한치도 어그러짐이 없이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불이는 이를 방해하고 저지하는 모든 사상․경향․힘들에 대한 투쟁이다.  안으로 신령한 ‘한울님’이 뚜렷하게 있고, 밖으로는 그 기운이 흘러 넘쳐야 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생활에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侍天主’한다는 것은 안으로는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밖으로는 모든 존재들의 심층을 연결하는 기운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도 그러한 경계에서 잠깐이라도, 한치도 옮김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侍’는 사람의 마음이 의지적으로 ‘한울님’과 일체 되고 ‘한울님’의 조화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侍天主’는 인간이 天人合一의 個全一體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무궁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해진다는 同歸一體를 의미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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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주사상

1) 人本主義的 인간관 (1) 侍天主思想 인간성 본질에 대한 최제우의 지론은 ‘侍天主思想’에 집약되어 있다.  侍天主는 人間과 神의 관계를 규정해 주는 중요한 개념이다.   侍天主란 사람이 ‘한울님’을 모신다는 의미다.  그리고 侍天主의 경지에 오르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侍天主의 주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을 신적 위치로 격상시켜 놓았고, 인간을 정점으로 하는 인본주의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인간은 神的품성을 소유하고 神性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侍天主에 대한 해석은 최제우가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었다는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生不忘 萬事知”의 21字 呪文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최제우는 이 呪文을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라 하였다.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인 이 21字 呪文 속에서 侍天主의 존재인 인간에 대한 이해는 “侍天主 造化定” 여섯 글자 가운데 ‘侍’字의 의미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다.   최제우는 呪文을 해석할 때 다음과 같이 侍天主의 ‘侍’字를 3단계로 정의했다.   “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으로는 神靈이 있고, 밖으로는 氣化가 있는 경지에 합일하여 한치도 옮기지 않는 것이다.  神靈은 내적 본성이고, 氣化는 다른 존재들과의 외적인 본래의 관계이며, 不移는 운동이며 실천이다.  안으로는 하늘과 합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과 자연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데 한치도 어그러짐이 없이 합치하는 것을 말한다.  불이는 이를 방해하고 저지하는 모든 사상․경향․힘들에 대한 투쟁이다.  안으로 신령한 ‘한울님’이 뚜렷하게 있고, 밖으로는 그 기운이 흘러 넘쳐야 하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생활에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侍天主’한다는 것은 안으로는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밖으로는 모든 존재들의 심층을 연결하는 기운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잠시도 그러한 경계에서 잠깐이라도, 한치도 옮김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侍’는 사람의 마음이 의지적으로 ‘한울님’과 일체 되고 ‘한울님’의 조화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侍天主’는 인간이 天人合一의 個全一體임을 자각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때 인간은 무궁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인간이 본질적으로 평등해진다는 同歸一體를 의미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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