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선종의 성립과 조사선

5.禪宗의 成立과 祖師禪  이상 달마로부터 여러 시대를 거쳐 외래불교가 중국인의 생활 종교로 형성되었다. 이를 일반적으로 조사선의 불교라 하는데 사실 중국의 선종은 조사선의 전개와 더불어 새로운 중국불교의 주류로서, 또한 종파로서의 선종의 차원을 넘어 종래의 전 불교를 통합한 입장이 되었다. 즉 그것은 인도에서 전래한 단순한 명상의 실천으로서의 선이 명상이나 삼매의 신비적 습선(習禪)의 영역을 탈피하여 현실적인 중국인의 일상생활속에 융합된 생활 종교로서 정착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48> 종래의 禪이 지니고 있던 신비성은 오히려 일상 생활 그 자체의 새삼스러운 감격이 되고, 신통력은 물을 이용하여 땔감을 운반하는 행동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속세 한 가운데서 세속적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내는 것이며, 관념적이며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구체적 생활 그 자체의 혁신인 것이다. 49> 동시에 선원이 종래의 전통적인 율원(律院)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제정된 선원청규(禪苑靑規)에 의한 수행생활과 출가승들이 직접 생산노동50>에 참여하여 자급자족의 생산적 교단을 형성하는데 이는 일찌기 전 불교의 역사상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사실로 불교의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인들의 생활 종교로서의 선불교의 완성과 선종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불교의 지도적 인물이 마조도일(馬祖道一)과 석두(石頭)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강호의 새로운 선불교는 선종의 본격적 역사서인 ‘보림전’을 편집하여 그 옛날 석가모니불이 가섭에게 부촉한 정법안장51>이 마조도일까지 전례되었다는 조사선의 계보를 완성시켰다. 또한 이 시대에 선승들의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적을 기록한 어록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이 종교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불법의 정신을 살아있는 인간의 특수한 대화로 연구하여 ‘선문답’이라는 새로운 수행방법이 창안되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곧 생활종교로서의 조사선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한 인간이 자기 전신을 특수한 역사적 현실에서 악전고투하여 싸워이긴 땀과 피가 젖은 사상의 표현인 조사선의 선종록은 인간 신뢰의 시대에 인간성 자각과 회복52> 을 의미하며 전통과 권위주의를 벗어난 인간의 생활종교의 모습을 여실히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선의 특성은 붓다의 정신을 인간의 평범한 생활에 밀착된 종교로서의 선불교를 전개한 것이라 하겠다. 곧 平常心是道인 것이다. 마조는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만 오염시키지 말라. 오염은 생사의 차별심이나 조작하려는 작위성이며 우리의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라고 하면서 평상심은 조작함도, 시비도, 취사도 범부나 성인의 구별하는 마음도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평범한 일상생활의 마음이라 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 청정심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한 일체법은 모두 심법이며 만법은 모두 마음을 쫓아서 생기며,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 된다 (心地法門). 이러한 마음이 道에도 業에도 얽매이지 말고, 忘念도 없고 조작도 없으며(無念無作), 닦음도 증득함도 없이(無修無證) 53> 모든 지위를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숭경하는 것이 道라는 것이다. 이처럼 평상심이 도라 하면서 다만 지금의 行住坐臥에 있어서 사물에 접하는 것이 모두 평상심이며,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평상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동작과 행위를 불성의 전체작용으로 본다. 진여불성이 마음이기에 평상심이 바로 도요, 부처임을 주장한다.(卽心是佛) 이러한 ‘卽心是佛’은 ‘平常心是道’와 더불어 조사선의 주요사상인데 이는 범심을 버리고 탐진취를 없애고 불성인 진여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범과 성이라는 분별이 없어진 범과 성 그 전체가 그대로 부처인 것을 의미한다. 54> 이러한 조사선의 깨달음의 장소는 바로 行住坐臥, 곧 인간의 모든 행동이며 견성은 더 이상 내면적인 근본 지혜나 本覺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구체적 행동이 되며55>, 진리는 이제 새삼스레 배우거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생활속에 자명하게 있으며, 현실이 바로 진리 즉 깨달음의 장소가 되는 것이며, 진리는 밖에서 구해지는 것도, 안에서 이상화 되는 것도 아니며 다만 일상 생활안에서 기운차게 작용하여 그치는 것이 없는 것이다.56> 이상에서 본 바 평상심으로 일상 생활을 전개하는 조사선의 본질이 일상성의 종교임을 알 수 있었다. 곧 평범한 일상 생활속에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각적 삶을 가꾸는 살아있는 지혜인 것이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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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성립과 조사선

5.禪宗의 成立과 祖師禪  이상 달마로부터 여러 시대를 거쳐 외래불교가 중국인의 생활 종교로 형성되었다. 이를 일반적으로 조사선의 불교라 하는데 사실 중국의 선종은 조사선의 전개와 더불어 새로운 중국불교의 주류로서, 또한 종파로서의 선종의 차원을 넘어 종래의 전 불교를 통합한 입장이 되었다. 즉 그것은 인도에서 전래한 단순한 명상의 실천으로서의 선이 명상이나 삼매의 신비적 습선(習禪)의 영역을 탈피하여 현실적인 중국인의 일상생활속에 융합된 생활 종교로서 정착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48> 종래의 禪이 지니고 있던 신비성은 오히려 일상 생활 그 자체의 새삼스러운 감격이 되고, 신통력은 물을 이용하여 땔감을 운반하는 행동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속세 한 가운데서 세속적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내는 것이며, 관념적이며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구체적 생활 그 자체의 혁신인 것이다. 49> 동시에 선원이 종래의 전통적인 율원(律院)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제정된 선원청규(禪苑靑規)에 의한 수행생활과 출가승들이 직접 생산노동50>에 참여하여 자급자족의 생산적 교단을 형성하는데 이는 일찌기 전 불교의 역사상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사실로 불교의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인들의 생활 종교로서의 선불교의 완성과 선종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불교의 지도적 인물이 마조도일(馬祖道一)과 석두(石頭)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강호의 새로운 선불교는 선종의 본격적 역사서인 ‘보림전’을 편집하여 그 옛날 석가모니불이 가섭에게 부촉한 정법안장51>이 마조도일까지 전례되었다는 조사선의 계보를 완성시켰다. 또한 이 시대에 선승들의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적을 기록한 어록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이 종교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불법의 정신을 살아있는 인간의 특수한 대화로 연구하여 ‘선문답’이라는 새로운 수행방법이 창안되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곧 생활종교로서의 조사선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한 인간이 자기 전신을 특수한 역사적 현실에서 악전고투하여 싸워이긴 땀과 피가 젖은 사상의 표현인 조사선의 선종록은 인간 신뢰의 시대에 인간성 자각과 회복52> 을 의미하며 전통과 권위주의를 벗어난 인간의 생활종교의 모습을 여실히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선의 특성은 붓다의 정신을 인간의 평범한 생활에 밀착된 종교로서의 선불교를 전개한 것이라 하겠다. 곧 平常心是道인 것이다. 마조는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만 오염시키지 말라. 오염은 생사의 차별심이나 조작하려는 작위성이며 우리의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라고 하면서 평상심은 조작함도, 시비도, 취사도 범부나 성인의 구별하는 마음도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평범한 일상생활의 마음이라 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 청정심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한 일체법은 모두 심법이며 만법은 모두 마음을 쫓아서 생기며,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 된다 (心地法門). 이러한 마음이 道에도 業에도 얽매이지 말고, 忘念도 없고 조작도 없으며(無念無作), 닦음도 증득함도 없이(無修無證) 53> 모든 지위를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숭경하는 것이 道라는 것이다. 이처럼 평상심이 도라 하면서 다만 지금의 行住坐臥에 있어서 사물에 접하는 것이 모두 평상심이며,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평상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동작과 행위를 불성의 전체작용으로 본다. 진여불성이 마음이기에 평상심이 바로 도요, 부처임을 주장한다.(卽心是佛) 이러한 ‘卽心是佛’은 ‘平常心是道’와 더불어 조사선의 주요사상인데 이는 범심을 버리고 탐진취를 없애고 불성인 진여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범과 성이라는 분별이 없어진 범과 성 그 전체가 그대로 부처인 것을 의미한다. 54> 이러한 조사선의 깨달음의 장소는 바로 行住坐臥, 곧 인간의 모든 행동이며 견성은 더 이상 내면적인 근본 지혜나 本覺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구체적 행동이 되며55>, 진리는 이제 새삼스레 배우거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생활속에 자명하게 있으며, 현실이 바로 진리 즉 깨달음의 장소가 되는 것이며, 진리는 밖에서 구해지는 것도, 안에서 이상화 되는 것도 아니며 다만 일상 생활안에서 기운차게 작용하여 그치는 것이 없는 것이다.56> 이상에서 본 바 평상심으로 일상 생활을 전개하는 조사선의 본질이 일상성의 종교임을 알 수 있었다. 곧 평범한 일상 생활속에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각적 삶을 가꾸는 살아있는 지혜인 것이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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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3) 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북종 신수는 “마음을 모아 선정에 들고 마음이 머무르게 하여 깨끗함을 보며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관조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증득한다”라 하여 점(漸)의 입장이었고44>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친 반면, 남종선에서는 이러한 가르침 모두 마음의 얽메임이라 하여 물리치고 있다.45> 무념의 근거에 있는 각자의 본성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한다. 남종선에서는 이르기를 “우리들 6대조사(六大祖師)는 모두 단도직입하여 곧바로 견성하여 깨닫도록 했지 단계적으로 깨닫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하여 학도자는 반드시 곧바로(頓) 불성을 자각한 뒤 점차로 인연을 닦아야 하여(漸修) 지금의 삶에서 해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돈오점수적 입장에서의 새로운 돈오선을 주장하는 것이다. 46> 혜능은 깨침에 있어서 頓悟의 길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신수가 제공하는 구경각의 길은 <屈.曲.直>의 어렵고 오랜 수행의 길이었다. 그 의미를 풀어보면,먼저 사람이 <一行>을 인식하게돨 때까지는 몸이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것과 같아(屈) 세계의 온갖 차별적 현상들에 미혹과 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定에드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曲), 마지막으로 만물이 한모습(一相)인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은 뱀이 대통 안에들어간 뒤 곧아지게 되는 것과 같다(直)는 말이다.47> 이러한 혜능과 신수의 ‘깨침과 닦음’의 길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존적이며 실천적인 차원의 논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올바른 깨침의 기준이다. 불교의 사상, 특히 대승불교의 사상은 현실적인 것이다. 깨침과 수행은 보살행없이 사변적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는 돈점론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기완성과 불국정토를 이루려는 보살행과 정토사상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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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3) 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북종 신수는 “마음을 모아 선정에 들고 마음이 머무르게 하여 깨끗함을 보며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관조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증득한다”라 하여 점(漸)의 입장이었고44>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친 반면, 남종선에서는 이러한 가르침 모두 마음의 얽메임이라 하여 물리치고 있다.45> 무념의 근거에 있는 각자의 본성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한다. 남종선에서는 이르기를 “우리들 6대조사(六大祖師)는 모두 단도직입하여 곧바로 견성하여 깨닫도록 했지 단계적으로 깨닫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하여 학도자는 반드시 곧바로(頓) 불성을 자각한 뒤 점차로 인연을 닦아야 하여(漸修) 지금의 삶에서 해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돈오점수적 입장에서의 새로운 돈오선을 주장하는 것이다. 46> 혜능은 깨침에 있어서 頓悟의 길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신수가 제공하는 구경각의 길은 <屈.曲.直>의 어렵고 오랜 수행의 길이었다. 그 의미를 풀어보면,먼저 사람이 <一行>을 인식하게돨 때까지는 몸이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것과 같아(屈) 세계의 온갖 차별적 현상들에 미혹과 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定에드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曲), 마지막으로 만물이 한모습(一相)인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은 뱀이 대통 안에들어간 뒤 곧아지게 되는 것과 같다(直)는 말이다.47> 이러한 혜능과 신수의 ‘깨침과 닦음’의 길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존적이며 실천적인 차원의 논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올바른 깨침의 기준이다. 불교의 사상, 특히 대승불교의 사상은 현실적인 것이다. 깨침과 수행은 보살행없이 사변적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는 돈점론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기완성과 불국정토를 이루려는 보살행과 정토사상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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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3) 신수의 닦음과 혜능의 깨침  북종 신수는 “마음을 모아 선정에 들고 마음이 머무르게 하여 깨끗함을 보며 마음을 일으켜 밖으로 관조하고 마음을 거두어 안으로 증득한다”라 하여 점(漸)의 입장이었고44> 참 마음을 지키는 것을 가르친 반면, 남종선에서는 이러한 가르침 모두 마음의 얽메임이라 하여 물리치고 있다.45> 무념의 근거에 있는 각자의 본성을 곧바로 자각하는 돈오견성(頓悟見性)을 주장한다. 남종선에서는 이르기를 “우리들 6대조사(六大祖師)는 모두 단도직입하여 곧바로 견성하여 깨닫도록 했지 단계적으로 깨닫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하여 학도자는 반드시 곧바로(頓) 불성을 자각한 뒤 점차로 인연을 닦아야 하여(漸修) 지금의 삶에서 해탈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곧 돈오점수적 입장에서의 새로운 돈오선을 주장하는 것이다. 46> 혜능은 깨침에 있어서 頓悟의 길을 제공한다. 이에 비해 신수가 제공하는 구경각의 길은 <屈.曲.直>의 어렵고 오랜 수행의 길이었다. 그 의미를 풀어보면,먼저 사람이 <一行>을 인식하게돨 때까지는 몸이 구부러져 펴지지 않는 것과 같아(屈) 세계의 온갖 차별적 현상들에 미혹과 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숨을 가라앉히고 定에드는 것은 몸을 구부리고 엎드려 나아가는 것과 같으며(曲), 마지막으로 만물이 한모습(一相)인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은 뱀이 대통 안에들어간 뒤 곧아지게 되는 것과 같다(直)는 말이다.47> 이러한 혜능과 신수의 ‘깨침과 닦음’의 길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실존적이며 실천적인 차원의 논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올바른 깨침의 기준이다. 불교의 사상, 특히 대승불교의 사상은 현실적인 것이다. 깨침과 수행은 보살행없이 사변적으로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며, 이루어질 수도 없는 것이다. 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논의되고 있는 돈점론은 바로 이 세상에서 자기완성과 불국정토를 이루려는 보살행과 정토사상에 입각하여 바라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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