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간화선 묵조선

7. 看話禪 과 黙照禪 선사상이 발전하였던 송나라 시대의 선종의 특징은 첫번째로, 이 시기에 不立文字 見性成佛 등의 사상이 확립되었고, 두번째로 법맥을 전하는 표시인 전등을 존중하는 사상이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선원에서만이 아니라 승려들의 생활이 일반적으로 선종의 청규를 의지하게 되었고, 네번째로서 불립문자의 가풍속에서 일반적으로는 선시,선문학등이 왕성하게 유행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섯번째로는 선사상의 중심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는 看話禪과 黙照禪이 대립하여 서로 비판하며 공박하는 양상을 띄었다는 것인데, 이제 여기서는 서로 대립하였던 看話禪과 黙照禪의 관계를 보도록 하려고 한다.70> 1) 묵조선(黙照禪)  黙照禪은 송대의 曹洞宗에서 祖師禪의 정신을 坐禪의 실천으로 새롭게 체계화하여 전개시킨 것이다. 黙照禪의 대표적 인물로서는 굉지정각(宏智正覺)을 들 수 있으며, 黙照禪에서의 묵(黙)은 묵묵히 좌선하는 것이요, 조(照)는 조용(照溶)으로 심성의 영묘한 깨달음의 작용을 말한다 할 수 있다. 이러한 黙은 좌선의 실천의 수행을 전개하는 모습으로, 照는 깨달음의 주체인 청정한 불성이 스스로 비추고 있는 것으로 黙照는 바로 수행과 깨달음이 하나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것을 宏智는 「묵조명」에서 “묵묵히 일체의 언어를 끊고 좌선할 때에 불성의 영묘한 작용이 분명히 깨달음의 세계로서 그대로 드러난다… 텅비어 있지만 그 불성의 본체는 영묘히 작용하고 있다. 영묘히 작용하여 깨달음의 세계를 비추며,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와 분별을 초월하고 있다… 깨달음의 세계는 묵묵히 좌선하는 그곳에 있으며… 묵묵히 좌선할 때에 삼라만상이 모두 광명을 놓아 설법하고 저들이 각각 증명하고 각자가 문답을 한다. 그러한 문답과 증명은 잘 맞아 하나가 되어 상응될 때, 깨달음으로 비춘 세계(照)에 좌선(黙)이 없으면 곧 미혹하게 되버린다… 黙照의 이치가 원만할 때 연꽃이 피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라고 한다. 또한 宏智語錄에 보면 黙照禪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坐禪하고 있는 사람은 修行도 깨달음도 없다. 그는 汚染되지 않고 청정하다. 본래 지혜의 빛은 위로부터 비추어 공의 세계에 작용하여 근원적인 깨달음의 지혜의 작용에 응하여 공의 세계에 그대로 비추어 주고 있는데, 이때에 차별심이 없어지면 깨달음(黙照)의 세계가 된다. 이렇게되면 언제 어디서나 부처의 세계를 현출(現出)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黙照禪은 수증불이(修證不二 : 깨달음과 수행은 둘로 나뉘지 않는다)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좌선에만 매이는 선승들의 경향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대혜(大慧)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71> 2)간화선(看話禪)  看話禪은 송(宋)대에 정통적인 禪의 계승이라 할 수 있는 黙照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입장에서 선 실천적인 禪 思想이라 하겠다. 看話禪의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大慧宗姑가 있다. 대혜(大慧)는 잘못된 묵조고좌선(黙照姑坐禪)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선의 입장인 看話를 부각시켰다. 看話는 옛 조사들이 깨닫게 된 기연(機緣;因緣)인 공안(公案)을 참구하는 새로운 禪 수행의 방법이다. 公案은 법칙의 조문(條文)을 말하는 것으로, 「산방야화(山房夜話)」에서 보면 “公은 천하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길로 가게하는 가르침(理致)요, 案은 깨달은 이치로 나아가는 올바른 방법이다.”라고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公案을 참구하는 것은 그 公案이 타파되기 전까지는 계속 公案과 대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생사의 윤회에서 해탈한 三昧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大慧가 인용하는 公案의 대표적인 것은 ‘무(無)’이다. 이것은 조주(趙州)가 사용한 말로써, 大慧는 이 글자로 인하여 문자 가운데서 증거를 찾으려 해서도 안되며, 일체의 분별심,차별심을 억누르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無’라는 화두(公案)을 참구하라고 한다. 이러한 公案은 자기의 심지를 개발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趙州의 ‘無’자 公案을 참구하도록 강조한 것은 5조 법연(法然)에서부터이다. 法然에 이어서 大慧가 이러한 ‘無’字를 참구하라고 하였고, 이러한 公案禪은 大慧이후에 새로운 公案禪으로서의 실천을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무문혜개(無門慧開)의 「무문관(無門關)」으로 완성된 看話禪이다. 大慧가 주장한 趙州의 ‘無’字公案은 참선 수행의 中心이 되고 있다. 無門이 편집한 「無門關」48원칙의 公案중에 趙州의 無字 公案을 제1칙에 싣고 있음은 그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겠다. 사실상 48칙의 公案은 趙州無字 公案 1칙의 전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문관의 제1칙을 살펴보자면, “참선은 마땅히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며, 절묘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보통의 심의식(心意識)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趙州의 無字 公案이 선종의 제일 관문이며, 이것을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 관문을 뚫는다면 역대 祖師들과 같은 안목으로 법을 본다… 그러나 이 無字 公案을 참구하여 밤낮으로 이 문제를 집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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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五家禪風  당나라 말기에 회창(會昌)의 폐불사건58>이 일어나 그 당시 불교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선종만은 이것을 계기로 크게 번영하였는데, 이로부터 중국 선종의 최성기라고 할 수 있는 5家가 성립하게 된다. 1) 僞仰宗  위앙종은 선종 5가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위산 영우(靈佑)와 앙산 혜적(仰山 慧寂)이 있다. 위앙종은 여래선(如來禪)59>과 조사선(祖師禪)을 구분하였으며, 돈오(頓悟)의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점수(漸修)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위앙종은 선의 방법이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가풍이 매우 심오하였으며, 위앙종의 대표적 법문을 나타내는 종지(宗旨)로서는 ‘여여불(如如佛)’60>이 있으며61>, 앙산은 자기의 자신의 방편 법문을 모든이에게 맞추어 지도하는 趙州의 ‘잡화점’과 같다고 설명한다.62> 2) 臨濟宗  임제종은 당 말기에 주로 하북 지방에서 교화를 펼치었다. 臨濟宗에서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臨濟 義玄을 들 수 있다. 그의 사상은 무엇보다도 ‘無依道人,無位眞人’이라는 말처럼 현실에 있어서 인간의 절대 무조건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을 곧바로 절대 긍정하며 일체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진실되고 꾸밈없는 자기의 주체를 전개하는 無位眞人을 주장하며, 이러한 無依道人이 바로 현재에 눈앞에 있는 우리들이라고 말한다. 즉 그는 ‘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祖師이며, 부처’라고 말하는 것이다.63> 또한 그는 ‘平常無事’‘無事是貴人’등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馬祖로부터의 平常心을 계승한 인간의 절대 긍정과 근원적인 인간의 주체를 지극당연한 일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종교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겠다.64> 3) 曹洞宗   洞山 良价와 曹山 本寂에 의해 공동으로 창립된 조동종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치를 철학적인 시와 노래로 표현하였다. 매우 일상적인 언어인 동시에, 완전히 일체의 인식과 설명을 뛰어넘는 철학적 구극의 진리이기도 한 ‘우리’,‘그’,‘너’,‘그것’,‘이것’등과 같은 대명사의 사용과 그의 의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그곳으로’라는 진리에 연관된 것에 관한 물음의 대답인 ‘다름아닌 이것이 그것(只這是)’이라는 추상적 철학적 이치가 그 禪風을 잘 드러낸다.65> 흔히들 조동종의 오위(五位)를 중시할 수 있으나, 이 ‘五位’66>는 깨닫기 힘든 제자들을 위한 교육상의 개요를 교육적인 편법으로 할 수 있겠다.67> 4) 雲門宗   운문종은 雪峯 義存의 法을 이어 발전시킨 계통으로서, 대표적 인물로서 雲門 文偃이 있다. 雲文은 함축된 短言의 寸句의 짧은 한마디로 학인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일자관(一字關)’이라고 한다. 雲門은 선문답에 있어 2자,3자 또는 1자로 된 대답 즉 一字關을 던져, 그 1자로 말안에서의  시와 철학을 드러낸다. 雲門이 이렇게 일자로서 질문과 대답사이의 생생함을 이루는 것은 추상적인 한자로서만이 나타낼 수 있는 묘미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68> 5) 法眼宗  법안종은 운문종과 같은 계열로서, 法眼 文益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法眼 文益의 선사상은 한 마디로 ‘三界唯心’이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겠다고 하겠다. 三界唯識頌을 보자면, ‘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 識이다. 識일 뿐이며 모든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三界唯心은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말하자면 외부 경계에 다섯가지의 경계가 있어 그것이 현식(現識)에 비추어 외부의 경계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三界唯心’의 사상은 馬祖 道一의 平常心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평상심의 일상성을 크게 관조하는 입장은 法眼의 독자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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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五家禪風  당나라 말기에 회창(會昌)의 폐불사건58>이 일어나 그 당시 불교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선종만은 이것을 계기로 크게 번영하였는데, 이로부터 중국 선종의 최성기라고 할 수 있는 5家가 성립하게 된다. 1) 僞仰宗  위앙종은 선종 5가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위산 영우(靈佑)와 앙산 혜적(仰山 慧寂)이 있다. 위앙종은 여래선(如來禪)59>과 조사선(祖師禪)을 구분하였으며, 돈오(頓悟)의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점수(漸修)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위앙종은 선의 방법이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가풍이 매우 심오하였으며, 위앙종의 대표적 법문을 나타내는 종지(宗旨)로서는 ‘여여불(如如佛)’60>이 있으며61>, 앙산은 자기의 자신의 방편 법문을 모든이에게 맞추어 지도하는 趙州의 ‘잡화점’과 같다고 설명한다.62> 2) 臨濟宗  임제종은 당 말기에 주로 하북 지방에서 교화를 펼치었다. 臨濟宗에서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臨濟 義玄을 들 수 있다. 그의 사상은 무엇보다도 ‘無依道人,無位眞人’이라는 말처럼 현실에 있어서 인간의 절대 무조건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을 곧바로 절대 긍정하며 일체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진실되고 꾸밈없는 자기의 주체를 전개하는 無位眞人을 주장하며, 이러한 無依道人이 바로 현재에 눈앞에 있는 우리들이라고 말한다. 즉 그는 ‘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祖師이며, 부처’라고 말하는 것이다.63> 또한 그는 ‘平常無事’‘無事是貴人’등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馬祖로부터의 平常心을 계승한 인간의 절대 긍정과 근원적인 인간의 주체를 지극당연한 일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종교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겠다.64> 3) 曹洞宗   洞山 良价와 曹山 本寂에 의해 공동으로 창립된 조동종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치를 철학적인 시와 노래로 표현하였다. 매우 일상적인 언어인 동시에, 완전히 일체의 인식과 설명을 뛰어넘는 철학적 구극의 진리이기도 한 ‘우리’,‘그’,‘너’,‘그것’,‘이것’등과 같은 대명사의 사용과 그의 의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그곳으로’라는 진리에 연관된 것에 관한 물음의 대답인 ‘다름아닌 이것이 그것(只這是)’이라는 추상적 철학적 이치가 그 禪風을 잘 드러낸다.65> 흔히들 조동종의 오위(五位)를 중시할 수 있으나, 이 ‘五位’66>는 깨닫기 힘든 제자들을 위한 교육상의 개요를 교육적인 편법으로 할 수 있겠다.67> 4) 雲門宗   운문종은 雪峯 義存의 法을 이어 발전시킨 계통으로서, 대표적 인물로서 雲門 文偃이 있다. 雲文은 함축된 短言의 寸句의 짧은 한마디로 학인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일자관(一字關)’이라고 한다. 雲門은 선문답에 있어 2자,3자 또는 1자로 된 대답 즉 一字關을 던져, 그 1자로 말안에서의  시와 철학을 드러낸다. 雲門이 이렇게 일자로서 질문과 대답사이의 생생함을 이루는 것은 추상적인 한자로서만이 나타낼 수 있는 묘미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68> 5) 法眼宗  법안종은 운문종과 같은 계열로서, 法眼 文益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法眼 文益의 선사상은 한 마디로 ‘三界唯心’이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겠다고 하겠다. 三界唯識頌을 보자면, ‘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 識이다. 識일 뿐이며 모든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三界唯心은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말하자면 외부 경계에 다섯가지의 경계가 있어 그것이 현식(現識)에 비추어 외부의 경계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三界唯心’의 사상은 馬祖 道一의 平常心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평상심의 일상성을 크게 관조하는 입장은 法眼의 독자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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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五家禪風  당나라 말기에 회창(會昌)의 폐불사건58>이 일어나 그 당시 불교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선종만은 이것을 계기로 크게 번영하였는데, 이로부터 중국 선종의 최성기라고 할 수 있는 5家가 성립하게 된다. 1) 僞仰宗  위앙종은 선종 5가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위산 영우(靈佑)와 앙산 혜적(仰山 慧寂)이 있다. 위앙종은 여래선(如來禪)59>과 조사선(祖師禪)을 구분하였으며, 돈오(頓悟)의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점수(漸修)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위앙종은 선의 방법이 과격하지 않으면서도 가풍이 매우 심오하였으며, 위앙종의 대표적 법문을 나타내는 종지(宗旨)로서는 ‘여여불(如如佛)’60>이 있으며61>, 앙산은 자기의 자신의 방편 법문을 모든이에게 맞추어 지도하는 趙州의 ‘잡화점’과 같다고 설명한다.62> 2) 臨濟宗  임제종은 당 말기에 주로 하북 지방에서 교화를 펼치었다. 臨濟宗에서 대표적인 인물로서는 臨濟 義玄을 들 수 있다. 그의 사상은 무엇보다도 ‘無依道人,無位眞人’이라는 말처럼 현실에 있어서 인간의 절대 무조건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살아있는 인간을 곧바로 절대 긍정하며 일체 그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진실되고 꾸밈없는 자기의 주체를 전개하는 無位眞人을 주장하며, 이러한 無依道人이 바로 현재에 눈앞에 있는 우리들이라고 말한다. 즉 그는 ‘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이 바로 祖師이며, 부처’라고 말하는 것이다.63> 또한 그는 ‘平常無事’‘無事是貴人’등을 설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馬祖로부터의 平常心을 계승한 인간의 절대 긍정과 근원적인 인간의 주체를 지극당연한 일상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인간의 생활종교로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하겠다.64> 3) 曹洞宗   洞山 良价와 曹山 本寂에 의해 공동으로 창립된 조동종은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이치를 철학적인 시와 노래로 표현하였다. 매우 일상적인 언어인 동시에, 완전히 일체의 인식과 설명을 뛰어넘는 철학적 구극의 진리이기도 한 ‘우리’,‘그’,‘너’,‘그것’,‘이것’등과 같은 대명사의 사용과 그의 의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그곳에서 그곳으로’라는 진리에 연관된 것에 관한 물음의 대답인 ‘다름아닌 이것이 그것(只這是)’이라는 추상적 철학적 이치가 그 禪風을 잘 드러낸다.65> 흔히들 조동종의 오위(五位)를 중시할 수 있으나, 이 ‘五位’66>는 깨닫기 힘든 제자들을 위한 교육상의 개요를 교육적인 편법으로 할 수 있겠다.67> 4) 雲門宗   운문종은 雪峯 義存의 法을 이어 발전시킨 계통으로서, 대표적 인물로서 雲門 文偃이 있다. 雲文은 함축된 短言의 寸句의 짧은 한마디로 학인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일자관(一字關)’이라고 한다. 雲門은 선문답에 있어 2자,3자 또는 1자로 된 대답 즉 一字關을 던져, 그 1자로 말안에서의  시와 철학을 드러낸다. 雲門이 이렇게 일자로서 질문과 대답사이의 생생함을 이루는 것은 추상적인 한자로서만이 나타낼 수 있는 묘미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겠다.68> 5) 法眼宗  법안종은 운문종과 같은 계열로서, 法眼 文益이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法眼 文益의 선사상은 한 마디로 ‘三界唯心’이라는 말로 집약될 수 있겠다고 하겠다. 三界唯識頌을 보자면, ‘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존재하는 것은 모두 識이다. 識일 뿐이며 모든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三界唯心은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내용이 마음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다시말하자면 외부 경계에 다섯가지의 경계가 있어 그것이 현식(現識)에 비추어 외부의 경계인 것처럼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三界唯心’의 사상은 馬祖 道一의 平常心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평상심의 일상성을 크게 관조하는 입장은 法眼의 독자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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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의 성립과 조사선

5.禪宗의 成立과 祖師禪  이상 달마로부터 여러 시대를 거쳐 외래불교가 중국인의 생활 종교로 형성되었다. 이를 일반적으로 조사선의 불교라 하는데 사실 중국의 선종은 조사선의 전개와 더불어 새로운 중국불교의 주류로서, 또한 종파로서의 선종의 차원을 넘어 종래의 전 불교를 통합한 입장이 되었다. 즉 그것은 인도에서 전래한 단순한 명상의 실천으로서의 선이 명상이나 삼매의 신비적 습선(習禪)의 영역을 탈피하여 현실적인 중국인의 일상생활속에 융합된 생활 종교로서 정착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48> 종래의 禪이 지니고 있던 신비성은 오히려 일상 생활 그 자체의 새삼스러운 감격이 되고, 신통력은 물을 이용하여 땔감을 운반하는 행동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속세 한 가운데서 세속적이지 않는 자유를 찾아내는 것이며, 관념적이며 일시적인 자유가 아니라 구체적 생활 그 자체의 혁신인 것이다. 49> 동시에 선원이 종래의 전통적인 율원(律院)에서 독립하여 새롭게 제정된 선원청규(禪苑靑規)에 의한 수행생활과 출가승들이 직접 생산노동50>에 참여하여 자급자족의 생산적 교단을 형성하는데 이는 일찌기 전 불교의 역사상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사실로 불교의 종교개혁이라 할 수 있으며, 중국인들의 생활 종교로서의 선불교의 완성과 선종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불교의 지도적 인물이 마조도일(馬祖道一)과 석두(石頭)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강호의 새로운 선불교는 선종의 본격적 역사서인 ‘보림전’을 편집하여 그 옛날 석가모니불이 가섭에게 부촉한 정법안장51>이 마조도일까지 전례되었다는 조사선의 계보를 완성시켰다. 또한 이 시대에 선승들의 일상생활의 대화나 행적을 기록한 어록이 출현하게 되는데, 이는 인간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이 종교였음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불법의 정신을 살아있는 인간의 특수한 대화로 연구하여 ‘선문답’이라는 새로운 수행방법이 창안되었음을 말하는데, 이는 곧 생활종교로서의 조사선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로 한 인간이 자기 전신을 특수한 역사적 현실에서 악전고투하여 싸워이긴 땀과 피가 젖은 사상의 표현인 조사선의 선종록은 인간 신뢰의 시대에 인간성 자각과 회복52> 을 의미하며 전통과 권위주의를 벗어난 인간의 생활종교의 모습을 여실히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선의 특성은 붓다의 정신을 인간의 평범한 생활에 밀착된 종교로서의 선불교를 전개한 것이라 하겠다. 곧 平常心是道인 것이다. 마조는 “도는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만 오염시키지 말라. 오염은 생사의 차별심이나 조작하려는 작위성이며 우리의 평상심이 바로 도이다”라고 하면서 평상심은 조작함도, 시비도, 취사도 범부나 성인의 구별하는 마음도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평범한 일상생활의 마음이라 하였는데, 이는 인간의 마음이 본래 청정심이라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또한 일체법은 모두 심법이며 만법은 모두 마음을 쫓아서 생기며, 마음이 만법의 근본이 된다 (心地法門). 이러한 마음이 道에도 業에도 얽매이지 말고, 忘念도 없고 조작도 없으며(無念無作), 닦음도 증득함도 없이(無修無證) 53> 모든 지위를 지치지 않고 스스로를 숭경하는 것이 道라는 것이다. 이처럼 평상심이 도라 하면서 다만 지금의 行住坐臥에 있어서 사물에 접하는 것이 모두 평상심이며,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있어 평상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동작과 행위를 불성의 전체작용으로 본다. 진여불성이 마음이기에 평상심이 바로 도요, 부처임을 주장한다.(卽心是佛) 이러한 ‘卽心是佛’은 ‘平常心是道’와 더불어 조사선의 주요사상인데 이는 범심을 버리고 탐진취를 없애고 불성인 진여를 드러내려고 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범과 성이라는 분별이 없어진 범과 성 그 전체가 그대로 부처인 것을 의미한다. 54> 이러한 조사선의 깨달음의 장소는 바로 行住坐臥, 곧 인간의 모든 행동이며 견성은 더 이상 내면적인 근본 지혜나 本覺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적,구체적 행동이 되며55>, 진리는 이제 새삼스레 배우거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들의 생활속에 자명하게 있으며, 현실이 바로 진리 즉 깨달음의 장소가 되는 것이며, 진리는 밖에서 구해지는 것도, 안에서 이상화 되는 것도 아니며 다만 일상 생활안에서 기운차게 작용하여 그치는 것이 없는 것이다.56> 이상에서 본 바 평상심으로 일상 생활을 전개하는 조사선의 본질이 일상성의 종교임을 알 수 있었다. 곧 평범한 일상 생활속에 언제 어디서나 자기의 주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각적 삶을 가꾸는 살아있는 지혜인 것이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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