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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제2절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엘리야」가 재림하리라는 것은 이미 「말라기」선지가 예언했던 바였고(말라기 4장 5절), 세례「요한」이 바로 재림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언이었다(마태복음 17장 13절, 마태복음 11장 14절). 그러나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자였다는 사실은, 일반 「유대」인은 물론 세례「요한」 자신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21절), 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의혹(마태복음 11장 3절)과, 그에 따르는 「유대」인들의 불신은 날로 더하여지게 되어, 마침내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Ⅰ.「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성전 이상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성전 이상을 다시 찾아 세워, 실체 성전된 「메시아」를 맞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대선지자와 12소선지를 보내시어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선지 「엘리야」를 보내시어, 「가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케 하여 「바알」신을 멸하신 것도, 이러한 이상 실현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을 멸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승천하였기 때문에(열왕기하 2장 11절),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사탄」을 분립해 가는 노정에 다시 「사탄」이 횡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체 성전 이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이에 앞서 「엘리야」가 지상에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사탄」분립의 사명을 계승 완수하게 하는 섭리가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섭리 적인 필연성에 의하여,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재림해야 할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1)).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물론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해 왔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말라기」선지를 통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그의 앞길을 예비하게 하시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마고 분명히 약속하셨었기 때문이다(말라기 4장 5절). 그런데 「엘리야」는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900여년 전에 승천한 선지자로서(열왕기하 2장 11절), 그는 분명히 영계에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인 사실이 있다(누가복음 9장 31절). 이와 같이되어 「유대」민족은 하늘에 머물고 있는 「엘리야」가 다시 올 때에는, 전에 승천하던 모양으로 반드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이,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엘리야」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고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메시야」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7장 10절1)을 보면,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보다 먼저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말라기 4장 5절) 「엘리야」는 어디 와 있는가 하는 공박을 받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 답변에 궁하여 예수님께 직접 문의한 결과(마태복음 17장 10절), 예수님은 바로 세례「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고 대답해 주셨다(마태복음 11장 14절1), 마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이야 어떻게 예수님의 이러한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가 ?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이 자기의 증언을 즐겨 받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ꡔ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ꡕ(마태복음 11장 1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요한」복음 1장 21절1)의 기록이 보이는 바, 이미 세례「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명백히 부인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제2절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엘리야」가 재림하리라는 것은 이미 「말라기」선지가 예언했던 바였고(말라기 4장 5절), 세례「요한」이 바로 재림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언이었다(마태복음 17장 13절, 마태복음 11장 14절). 그러나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자였다는 사실은, 일반 「유대」인은 물론 세례「요한」 자신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21절), 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의혹(마태복음 11장 3절)과, 그에 따르는 「유대」인들의 불신은 날로 더하여지게 되어, 마침내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Ⅰ.「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성전 이상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성전 이상을 다시 찾아 세워, 실체 성전된 「메시아」를 맞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대선지자와 12소선지를 보내시어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선지 「엘리야」를 보내시어, 「가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케 하여 「바알」신을 멸하신 것도, 이러한 이상 실현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을 멸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승천하였기 때문에(열왕기하 2장 11절),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사탄」을 분립해 가는 노정에 다시 「사탄」이 횡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체 성전 이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이에 앞서 「엘리야」가 지상에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사탄」분립의 사명을 계승 완수하게 하는 섭리가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섭리 적인 필연성에 의하여,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재림해야 할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1)).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물론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해 왔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말라기」선지를 통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그의 앞길을 예비하게 하시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마고 분명히 약속하셨었기 때문이다(말라기 4장 5절). 그런데 「엘리야」는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900여년 전에 승천한 선지자로서(열왕기하 2장 11절), 그는 분명히 영계에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인 사실이 있다(누가복음 9장 31절). 이와 같이되어 「유대」민족은 하늘에 머물고 있는 「엘리야」가 다시 올 때에는, 전에 승천하던 모양으로 반드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이,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엘리야」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고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메시야」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7장 10절1)을 보면,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보다 먼저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말라기 4장 5절) 「엘리야」는 어디 와 있는가 하는 공박을 받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 답변에 궁하여 예수님께 직접 문의한 결과(마태복음 17장 10절), 예수님은 바로 세례「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고 대답해 주셨다(마태복음 11장 14절1), 마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이야 어떻게 예수님의 이러한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가 ?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이 자기의 증언을 즐겨 받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ꡔ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ꡕ(마태복음 11장 1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요한」복음 1장 21절1)의 기록이 보이는 바, 이미 세례「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명백히 부인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제2절 엘리야의 재림과 세례요한 「엘리야」가 재림하리라는 것은 이미 「말라기」선지가 예언했던 바였고(말라기 4장 5절), 세례「요한」이 바로 재림한 「엘리야」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증언이었다(마태복음 17장 13절, 마태복음 11장 14절). 그러나 세례「요한」이 「엘리야」의 재림자였다는 사실은, 일반 「유대」인은 물론 세례「요한」 자신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21절), 이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세례「요한」의 의혹(마태복음 11장 3절)과, 그에 따르는 「유대」인들의 불신은 날로 더하여지게 되어, 마침내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Ⅰ.「엘리야」의 재림을 중심한 「유대」인들의 심적 동향 통일왕국시대에 있어서, 「솔로몬」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의 성전 이상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던 성전 이상을 다시 찾아 세워, 실체 성전된 「메시아」를 맞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4대선지자와 12소선지를 보내시어 「사탄」분립의 역사를 하셨다. 또 하나님께서 특별선지 「엘리야」를 보내시어, 「가멜」산에서 「바알」선지자들과 대결케 하여 「바알」신을 멸하신 것도, 이러한 이상 실현의 뜻을 가로막는 「사탄」을 멸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이루지 못하고 승천하였기 때문에(열왕기하 2장 11절), 「메시아」를 맞기 위하여 「사탄」을 분립해 가는 노정에 다시 「사탄」이 횡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실체 성전 이상이 이루어지기 위하여는, 이에 앞서 「엘리야」가 지상에 다 이루지 못하고 간 「사탄」분립의 사명을 계승 완수하게 하는 섭리가 있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러한 섭리 적인 필연성에 의하여,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재림해야 할 것을 예언했던 것이다(말라기 4장 5절1)). 선지자들의 예언을 믿고 있던 「유대」인들의 간곡한 소망은 물론 「메시아」의 강림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유대」인들이 갈망해 왔던 것은, 「엘리야」의 재림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말라기」선지를 통하여, 「메시아」의 강림에 앞서 그의 앞길을 예비하게 하시기 위하여,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시마고 분명히 약속하셨었기 때문이다(말라기 4장 5절). 그런데 「엘리야」는 이미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900여년 전에 승천한 선지자로서(열왕기하 2장 11절), 그는 분명히 영계에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인 사실이 있다(누가복음 9장 31절). 이와 같이되어 「유대」민족은 하늘에 머물고 있는 「엘리야」가 다시 올 때에는, 전에 승천하던 모양으로 반드시 하늘로부터 내려오리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오늘날의 기독교 신도들이,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리라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듯이, 당시의 「유대」인들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엘리야」가 다시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대로, 「엘리야」가 다시 왔다는 소식은 없고 예수님께서 느닷없이 「메시야」를 자처하고 나섰을 때, 「예루살렘」에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17장 10절1)을 보면,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만일 예수님이 「메시아」라면 그보다 먼저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말라기 4장 5절) 「엘리야」는 어디 와 있는가 하는 공박을 받게 되었다. 제자들은 그 답변에 궁하여 예수님께 직접 문의한 결과(마태복음 17장 10절), 예수님은 바로 세례「요한」이 그들이 고대하고 있는 「엘리야」라고 대답해 주셨다(마태복음 11장 14절1), 마태복음 17장 13절). 제자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겠지만,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는 다른 「유대」인들이야 어떻게 예수님의 이러한 증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인가 ?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이 자기의 증언을 즐겨 받지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ꡔ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ꡕ(마태복음 11장 14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이 「엘리야」라고 하신 예수님의 증언을 더욱 믿을 수 없었던 것은, 「요한」복음 1장 21절1)의 기록이 보이는 바, 이미 세례「요한」 자신이 자기는 「엘리야」가 아니라고 명백히 부인한 뒤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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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된 성구
Ⅵ.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데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실 때, 이것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ꡔ「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ꡕ(마태복음 16장 23절)고하신 책망으로 미루어,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이 어찌하여 「베드로」에 대해 그토록 책망하셨을 것인가 ? 그러나 사실에서는 예수님은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하실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시려고 그 탕감조건으로서, 부득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하고 계셨던 때였다(누가복음 9장 31절). 그런 때에 「베드로」가 이 길을 만류한 것은, 결국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처럼 책망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ꡔ다 이루었다ꡕ(요한복음 19장 30절)고 최후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아시게 된 후부터, 예수님은 육적인 구원은 재림 후의 섭리로 미루시고,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만이라도 조성하시려고 십자가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ꡔ다 이루었다ꡕ고하신 그 말씀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적인 구원섭리의 목적으로 세우셨던,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한복음 4장 24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던 근본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구원이 예수님이 띠고 오셨던 사명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다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원치 않는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그의 뜻을 맞추어 드리는 신부가 지상에 생겨나기 전에,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그 뜻을 이루시겠다고 재림하실 것인가 ! ꡔ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ꡕ(누가복음 18장 8절1))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예상하시고 개탄하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서를 중심하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길을 가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더욱 명백하게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영통을 하지 못하면 영통하는 딴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서라도 바른 신앙을 가져야만, 끝날에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된 성구
Ⅵ.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데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실 때, 이것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ꡔ「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ꡕ(마태복음 16장 23절)고하신 책망으로 미루어,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이 어찌하여 「베드로」에 대해 그토록 책망하셨을 것인가 ? 그러나 사실에서는 예수님은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하실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시려고 그 탕감조건으로서, 부득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하고 계셨던 때였다(누가복음 9장 31절). 그런 때에 「베드로」가 이 길을 만류한 것은, 결국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처럼 책망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ꡔ다 이루었다ꡕ(요한복음 19장 30절)고 최후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아시게 된 후부터, 예수님은 육적인 구원은 재림 후의 섭리로 미루시고,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만이라도 조성하시려고 십자가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ꡔ다 이루었다ꡕ고하신 그 말씀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적인 구원섭리의 목적으로 세우셨던,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한복음 4장 24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던 근본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구원이 예수님이 띠고 오셨던 사명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다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원치 않는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그의 뜻을 맞추어 드리는 신부가 지상에 생겨나기 전에,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그 뜻을 이루시겠다고 재림하실 것인가 ! ꡔ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ꡕ(누가복음 18장 8절1))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예상하시고 개탄하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서를 중심하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길을 가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더욱 명백하게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영통을 하지 못하면 영통하는 딴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서라도 바른 신앙을 가져야만, 끝날에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