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된 성구

Ⅵ.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성구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필연적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는 데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하실 때, 이것을 만류하는 「베드로」를 보시고, ꡔ「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ꡕ(마태복음 16장 23절)고하신 책망으로 미루어, 그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이 어찌하여 「베드로」에 대해 그토록 책망하셨을 것인가 ? 그러나 사실에서는 예수님은 그때 이미,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어차피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를 완성하실 수 없게 되자, 영적인 구원만이라도 이루시려고 그 탕감조건으로서, 부득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로 결정하고 계셨던 때였다(누가복음 9장 31절). 그런 때에 「베드로」가 이 길을 만류한 것은, 결국 십자가로 인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길마저 방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처럼 책망하셨던 것이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ꡔ다 이루었다ꡕ(요한복음 19장 30절)고 최후의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로써 구원섭리의 전 목적이 완성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불신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아시게 된 후부터, 예수님은 육적인 구원은 재림 후의 섭리로 미루시고,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만이라도 조성하시려고 십자가의 노정을 걸으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ꡔ다 이루었다ꡕ고하신 그 말씀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인하여 제2차적인 구원섭리의 목적으로 세우셨던, 십자가에 의한 영적인 구원섭리의 기대를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른 신앙을 갖기 위하여는, 첫째로 기도에 의한 신령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해야 되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이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라(요한복음 4장 24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은 죽음의 길을 가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셨던 근본 목적을 알지 못하고, 영적인 구원이 예수님이 띠고 오셨던 사명의 전부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아서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다가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원치 않는 죽음의 길을 가신, 예수님의 억울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풀어드리고 그의 뜻을 맞추어 드리는 신부가 지상에 생겨나기 전에,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그 뜻을 이루시겠다고 재림하실 것인가 ! ꡔ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ꡕ(누가복음 18장 8절1))고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인간의 무지를 예상하시고 개탄하신 말씀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성서를 중심하고, 예수님은 어디까지나 죽음의 길을 가시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혔지만, 영적으로 예수님에게 직접 물어보면, 더욱 명백하게 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자기가 영통을 하지 못하면 영통하는 딴 사람의 증언을 통하여서라도 바른 신앙을 가져야만, 끝날에 「메시아」를 맞을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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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만이 성경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성서를 다시 읽어보면,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이사야」서 9장11장, 60장 등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장차 잉태될 예수님이 생전에 「유대」인의 왕이 되어, 영세토록 소멸되지 않을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던 사실을 알게 된다(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러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전편 제1장 5절 ꁽ.2).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인간 시조는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성서에서 들어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안 따먹고 완성될 수도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과 같이 따먹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구원섭리를 위한 인간 책임분담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그것을 지키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멸망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떠난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혹은 불순종하여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도록 예정하시고(출애굽기 3장 8절), 그에게 이를 명령하셨었으나, 그들은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그 후손들만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수행해야 될 책임분담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해 여부에 따라 그 어느 한 면의 결과를 이루어 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기록과 같이,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지만, 한편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과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기록과 같이, 저들이 「메시아」를 믿고 모심으로써, 영광으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만이 이루어지고,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 및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예언은 모두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남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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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만이 성경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성서를 다시 읽어보면,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이사야」서 9장11장, 60장 등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장차 잉태될 예수님이 생전에 「유대」인의 왕이 되어, 영세토록 소멸되지 않을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던 사실을 알게 된다(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러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전편 제1장 5절 ꁽ.2).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인간 시조는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성서에서 들어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안 따먹고 완성될 수도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과 같이 따먹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구원섭리를 위한 인간 책임분담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그것을 지키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멸망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떠난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혹은 불순종하여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도록 예정하시고(출애굽기 3장 8절), 그에게 이를 명령하셨었으나, 그들은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그 후손들만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수행해야 될 책임분담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해 여부에 따라 그 어느 한 면의 결과를 이루어 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기록과 같이,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지만, 한편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과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기록과 같이, 저들이 「메시아」를 믿고 모심으로써, 영광으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만이 이루어지고,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 및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예언은 모두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남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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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Ⅴ. 십자가에 대한 예언의 양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그가 「메시아」로 오셨던 전 목적을 완성하기 위한 예정에서 온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면, 「이사야」서 53장에, 그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실 것으로 예언되어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실 것을 예언한 말씀만이 성경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성서를 다시 읽어보면, 구약시대에 이미 선지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이사야」서 9장11장, 60장 등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시어 장차 잉태될 예수님이 생전에 「유대」인의 왕이 되어, 영세토록 소멸되지 않을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실 것을 예언케 하셨던 사실을 알게 된다(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러면 어찌하여 이와 같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게 되었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인간 자신이 그의 책임분담을 완수함으로써만 완성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전편 제1장 5절 ꁽ.2).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인간 시조는 그들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하고 타락되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의 책임분담을 완수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그 책임분담을 완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예를 성서에서 들어보면, 선악과를 따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것을 안 따먹고 완성될 수도 있는 반면에, 결과적으로 나타난 사실과 같이 따먹고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편 또 하나님은 구약시대의 구원섭리를 위한 인간 책임분담의 조건으로 십계명을 주셨던 것인데, 여기에서도 인간은 그것을 지키어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고, 혹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멸망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애급에서 「가나안」복지를 향하여 떠난 「이스라엘」민족이 「모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세워야 할 책임분담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나안」복지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혹은 불순종하여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복지로 들어가도록 예정하시고(출애굽기 3장 8절), 그에게 이를 명령하셨었으나, 그들은 불신으로 인하여 모두 광야에서 쓰러지고, 그 후손들만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수행해야 될 책임분담이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이루어 드릴 수도 있고, 혹은 그 뜻에 반하여 이루어 드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의 책임분담 수해 여부에 따라 그 어느 한 면의 결과를 이루어 놓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메시아」를 보내시는 것은 하나님의 책임분담이지만, 오시는 「메시아」를 믿고 안 믿는 것은 인간의 책임분담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내시는 「메시아」를 「유대」민족이 하나님의 뜻대로 믿을 수도 있었던 것이고, 혹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분담 수행 여부에 따라 나타날 양면의 결과에 대비하여, 하나님은 예수님의 ‘뜻’ 성사에 대한 예언을 양면으로 하시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기록과 같이, 「유대」민족이 불신으로 돌아가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지만, 한편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과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기록과 같이, 저들이 「메시아」를 믿고 모심으로써, 영광으로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경우에 대한 예언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불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사야」서 53장의 예언만이 이루어지고, 「이사야」서 9장, 11장, 60장 및 「누가」복음 1장 31절 이하의 예언은 모두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말씀으로 남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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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Ⅳ.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의       한계와 예수 재림의 목적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 예수님은 영 육 양면의 구원섭리를 완수하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사야서 9장 6 – 7절)과,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천사의 교시(누가복음 1장 31 – 33절) 그대로, 또 예수께서 친히 천국이 가까왔다고 하신 말씀(마태복음 4장 17절)과 같이, 그는 영원토록 소멸되지 않는 지상천국을 건설하셨을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흙으로 육신을 창조하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세기 2장 7절). 이와 같이 영과 육으로 창조된 인간이므로, 타락도 역시 영 육 아울러 된 것이었다. 따라서 구원도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하셔야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강림하셨던 목적이 구원섭리를 완수하시려는 데 있었으므로 그는 영적 구원과 육적 구원을 아울러 완성하셔야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체를 이룬다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스스로 포도나무로, 신도들을 그 가지로 비유하셨고(요한복음 15장 5절), 또 ꡔ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ꡕ(요한복음 14장 20절)고도 하셨다. 이처럼 말씀하신 이유는 영 육 아울러 타락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가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를 믿음으로써 영 육 아울러 그와 하나가 되었다면, 타락인간도 영 육 아울러 구원을 받았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불신하여 그를 십자가에 내주었으므로, 그의 육신은 「사탄」의 침범을 당하여 마침내 살해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에 「사탄」의 침범을 당한 예수님을 믿어, 그와 한 몸을 이룬 신도들의 육신도 그대로 「사탄」의 침범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어 아무리 독실한 신앙자라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써는 육적 구원은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아담」부터 내려오는 혈통적인 원죄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 믿는 성도라 할지라도, 그에게 원죄는 그대로 남아지게 되어, 그는 또 원죄 있는 자식을 낳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육신을 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원죄로 말미암아 항상 육신을 통하여 들어오는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기 위함이며, ꡔ쉬지 말고 기도하라ꡕ(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1))한 것도, 이와 같이 십자가에 의한 구속으로도 근절되지 않은, 원죄로 인한 「사탄」침범의 조건을 막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의 육신이 「사탄」의 침범을 당함으로써, 육적 구원섭리의 목적은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달성하시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피의 대속으로 부활의 승리 적인 기대를 조성함으로써 영적 구원의 기대를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 부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신도들은 영적 구원섭리의 혜택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으로 인한 구원은 영적 구원뿐이므로, 잘 믿는 신도들에게도 원죄는 육적으로 여전히 남아 있어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그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그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죄와 더불어 더욱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십자가로써 청산하시지 못한 원죄를 속하고 육적 구원을 완성함으로써 영 육 아우른 구원섭리의 목적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지상에 재림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십자가의 대속을 받은 성도들도 원죄와 싸워야 하기 때문에, 사도들 중에서 신앙의 중심이 되었던 「바울」도, 육적으로 들어오는 죄악의 길을 막을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하던 끝에, ꡔ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ꡕ(로마서 7장 22절 – 25절)고 말하였다. 이것은 영적 구원의 완성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육적 구원의 미완성에 대한 비탄을 표명한 것이라 하겠다. 또 「요한」1서 1장 8절1) 내지 10절에 ꡔ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ꡕ라고 한 「요한」의 고백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받고 있는 우리들도, 여전히 원죄 때문에 범죄자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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