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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영혼불멸과 지옥의 부정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영혼불멸과 지옥의 부정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영혼불멸과 지옥의 부정
4. 영혼 불멸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부정한다. 인간이란 생리적이고 물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존재이며,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으로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천국이나 지옥에 가게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불의한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끝나지만 의인의 죽음은 ‘부활’에 대한 여호와의 기억으로 다시 영적으로 재창조된다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영혼을 2가지로 이해한다. 첫째, 영혼이란 육체적 생명과 분리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특질을 모두 가진 인간 자신을 말하며, 인간이 죽으면 활동적인 생명력이 사라지기에영혼 또한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명기 12장 20절을 “너희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하며 만약 영혼을 인간의 정신적 특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 어떻게 영혼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둘째, 영혼이란 인간이나 동물 자체, 또는 인간이나 동물이 누리는 생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곧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은 영혼을 갖고 있는 것이 되며, 따라서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으며 결국 살아 있는 한 모두 영혼을 갖는다고 말한다. 자연히 영혼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그들 고유의 성서해석에서 이를 구체화한다. 첫째, 욥기 7,15-16을 사용하여 ‘숨이 막히면 죽고 더는 생명이 없다고 하는데 사후에 무슨생명이 있다고 하느냐?’고 주장한다. 둘째, 창세기 9,5에서 ‘생명을 피라고 하였는데 사후 생명에는 피가 없다. 따라서, 영혼불멸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한다. 셋째, 전도서 9,5의 “무릇 산자는 죽을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를 인용하여 사후 생명이 있다면 왜 아무것도 모르느냐?고 한다. 이에 반하여 교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각 사람의 영혼은 육체에 부여되어서 창조 되었고, 영혼은 육체의 체형이며 육체와 함께 인간 개성의실체를 이룬다”고 가르친다. 또한, 육신과 영혼은 일체를 이루는 공동 구성원리이기는하지만, 영혼은 영체이기 때문에 육체를 떠나서 단독으로 존재할수 있다(죽음). 그러나, 영혼은 어디까지나 자기 육체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이것이 천사와 다른 점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귀절은 요한 11,25절 이하 – 예수께서는 마르타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와 루까 22,19-“여러분이 참고 견디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이다. 그리고, 루까 16,19-32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도 의인과 악인 모두 그들의 영혼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또 마태 복음 10, 28의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 하시오”라는 구절도 이를 뒷받침한다. 5. 지옥의 존재 부정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증인의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부정은 내세의 존재, 지옥의 존재 부정으로 연결된다. 여호와의 증인은 기성교회에서 말하는 지옥은 비(非)성서적, 非이성적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반대되고 하느님의 공의와도 모순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죽은 자는 생명도 없고 의식도 없기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지옥은 불이 붙는 뜨거운 곳도,악귀가 득실거리는 곳도, 끝없이 고통을 받는 곳도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인간은 죄를 짓든 안짓든간에 죽음으로 소멸되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은 ‘셔올’이라는 히브리어와 ‘하데스’라는 희랍어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곧 기성교회에서 이 말을 지옥으로 번역하지만, 성서에서 이 용어가 나오는 곳을 찾아보면 고초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일반 무덤을 가리킨다고 한다. 이 곳은 무존재, 무의식의 장소, 하느님께서 부활시킬 때까지 죽은 자가 머물러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불 붙는 지옥’(마태 5,22)은 예루살렘 성 밖에 있는 ‘힌놈의 골짜기’를 말하는데, 그곳은 유황을 넣어 죄수들과 동물들의 시체를 태우던 곳이었기에 사람들의 영원한 멸망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벌 받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거는 성서적으로 큰 오류에 빠져 있다. 그 근거로서는 마태오 13,42; 마르코 9,43; 마태오 8,22;25,46; 유다 1,13 을 들 수 있다. 또한 영벌 교리는 하느님의 사랑이나 공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빠스카를 통해 인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로써 그 은혜를 거부하는 인간은 즉,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은 그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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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성 부정
3.예수의 신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첫 피조물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 자신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영적 피조물을 통해 다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인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미카엘 대천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고 그 피조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의 여러 부분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요한 14,28 –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자발적인 순명.자기비하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요한 묵시록 3,14 – 여호와의 증인은 요한 묵시록 3,14절 하반부, 즉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첫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속격의 의미는 ‘하느님의(of God)이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by God)이 아니다. 만일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라는 뜻을 잦는 ‘του θεου’보다는 전치사 ‘ὺπο(에 의해서)’를 사용했을 것이다. ③ 골로사이서 1,15 – “모든 조물의 맏이시로다, 먼저 나신 자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제일 처음 창조되어진 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1,16.17)라고 하며 그 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15절의 ‘모든 조물의 맏이’라는 지칭은 그 분의 탁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분이 첫 피조물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교부들도 사도 바오로가πρωτοχτιοι(먼저 창조된)를 사용하지 않고 πρωτοκος(먼저 나신)를 사용한 사실에 대해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나셨고’,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위해 1,16-17에 ‘다른’이라는 말을 삽입시켜 놓고 있다. ④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오 4,1의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대목을 예로 들면서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 하느님을 유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 구절을 예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처럼 유혹을 당할 수 있는 별개의 개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예수님을 아담과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즉, “완전한 인간 아담의 불순명으로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동등한 또 다른 인간 영혼, 곧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영혼이 필요했다.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불완전하게 출생했으므로 자격이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 부터 출생한 완전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수만이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정확한 대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예수는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 분을 아담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오류는 아리우스 이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예수의 신성 부정
3.예수의 신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첫 피조물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 자신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영적 피조물을 통해 다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인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미카엘 대천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고 그 피조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의 여러 부분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요한 14,28 –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자발적인 순명.자기비하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요한 묵시록 3,14 – 여호와의 증인은 요한 묵시록 3,14절 하반부, 즉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첫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속격의 의미는 ‘하느님의(of God)이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by God)이 아니다. 만일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라는 뜻을 잦는 ‘του θεου’보다는 전치사 ‘ὺπο(에 의해서)’를 사용했을 것이다. ③ 골로사이서 1,15 – “모든 조물의 맏이시로다, 먼저 나신 자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제일 처음 창조되어진 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1,16.17)라고 하며 그 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15절의 ‘모든 조물의 맏이’라는 지칭은 그 분의 탁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분이 첫 피조물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교부들도 사도 바오로가πρωτοχτιοι(먼저 창조된)를 사용하지 않고 πρωτοκος(먼저 나신)를 사용한 사실에 대해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나셨고’,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위해 1,16-17에 ‘다른’이라는 말을 삽입시켜 놓고 있다. ④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오 4,1의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대목을 예로 들면서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 하느님을 유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 구절을 예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처럼 유혹을 당할 수 있는 별개의 개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예수님을 아담과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즉, “완전한 인간 아담의 불순명으로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동등한 또 다른 인간 영혼, 곧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영혼이 필요했다.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불완전하게 출생했으므로 자격이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 부터 출생한 완전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수만이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정확한 대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예수는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 분을 아담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오류는 아리우스 이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