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예수의 신성 부정

  3.예수의 신성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다.  그 교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첫 피조물이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아들이지 하느님 자신은 아니다. 하느님은  이 영적 피조물을 통해 다른 만물을 창조하신 것이다. ②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영적 지위에 있던 영적 피조물인 미카엘 대천사가 대천사의 성품을 벗어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미카엘 대천사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고 그 피조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서의 여러  부분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몇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요한 14,28 –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 당신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당신을 더욱 감추고 작아지려는 자발적인 순명.자기비하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러한 순종을 통해 아버지와 온전히 일치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구절이다. 결국 아버지와의 완전한 일치를 의존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② 요한 묵시록 3,14 – 여호와의 증인은 요한 묵시록 3,14절 하반부, 즉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이라는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는  그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한다. 그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번역하면서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창조의 시작.첫 피조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속격의 의미는 ‘하느님의(of God)이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by God)이 아니다. 만일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어졌다는 것을 가르쳐 주려고 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라는 뜻을 잦는 ‘του θεου’보다는 전치사 ‘ὺπο(에 의해서)’를 사용했을 것이다. ③ 골로사이서 1,15 – “모든 조물의 맏이시로다, 먼저 나신 자로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 구절을 ‘제일 처음 창조되어진 자’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달리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자가 되시며’(1,16.17)라고 하며 그 분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15절의 ‘모든 조물의 맏이’라는 지칭은 그 분의  탁월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이지, 그 분이 첫 피조물이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교부들도  사도  바오로가πρωτοχτιοι(먼저 창조된)를 사용하지 않고 πρωτοκος(먼저 나신)를 사용한 사실에 대해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리스도는  ‘나셨고’, 우주는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들의 교리를 위해 1,16-17에 ‘다른’이라는 말을 삽입시켜 놓고 있다. ④ 여호와의 증인들은 마태오 4,1의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신 대목을 예로 들면서 “만일 예수께서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이 하느님을 유혹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 구절을 예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천사나 인간처럼 유혹을 당할 수 있는 별개의 개체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적 의미를 논하면서 예수님을 아담과 똑같은 인간적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즉, “완전한 인간 아담의 불순명으로 상실한 완전한 생명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담과 동등한 또 다른 인간 영혼, 곧 인류를 위해서 자기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으로 바칠 영혼이 필요했다.그러나 아담의 후손은 모두 불완전하게 출생했으므로  자격이 없고 오직 하느님으로 부터 출생한 완전한 인간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수만이 아담이 상실한 것을 회복시킬 정확한 대속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외에 예수는 대천사 미카엘과 같은  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데살전 4,16에 부활을 개시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 ‘천사의 소리’로 언급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국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그 분을 아담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켜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은 오류는 아리우스 이단과 그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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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부정

2. 삼위일체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란 단어나 개념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속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는 그들의 자구적인 성서해석에 기인한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들은 기성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지찾아내 보라고 요구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간다. 또한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히브리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 삼위일체 교리가 시작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350년 후이며, 삼위일체라는 단일 용어는 성서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τριας라는 단어는  主後  180년 경의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Trinitas가 나타나지만 그 말 자체가 현재의 삼위일체의 개념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하면서 이 교리는  원래 바빌론에서 이교인들이 믿고  있던 신앙인데, 사도들이 죽은후 그리스도교에  흘러 들어와 떼르뚤리아노가 체계화시켰으며,  결국 성서에도 없는 이러한 개념을 서기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이기에 이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것도, 성서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갈라진 하느님,  3神으로서의 하느님.  곧 성부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자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 1/3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성경에는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거나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구절들이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이시라면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이 아버지가 그를 보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자기자신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또 예수께서 직접 “말세의 시간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코  13, 32)고 말하였고,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요한 14,28)고 하셨기에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또 하느님과 동등하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은 성령에 대해 ‘성령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라고 정의한다. 곧 성령은 한 위격, 또는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성령의 독립적인  위격을 부인하기 위해 성령에 대해 언급할 때 마다 ‘영’(spirit)이란 단어를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 그들은 마태오 3,11을 예로 들어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한다. 곧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셰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셰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는데 물(水)이 한 位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한의 예언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성취되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사도 2,48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활동력으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야 말이된다고 하면서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며, 하느님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것이기에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는 그리스도교는 종말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 아니다.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이 삼위일체이심은 마태오 28,19(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과 2고린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에서 드러난다. 또 창세기 1,26에  나타난 ‘엘로힘’의 복수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맞추어 교회는 從屬論, 樣態論,三神論 등을  배격하고 하느님께 오직 하나의 본질이 있으며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세 位의 개별적 자립존재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최종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계시의 결론이며  동시에 인간 구원을 위한 구원신비의 요약이자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체험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은 사랑자체로서 유일한  분이신데 언제나 아버지,아들,영으로서  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만약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칠 수 없다면, 그들이  즐겨 쓰는 神政이란 용어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7)  그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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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부정

2. 삼위일체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란 단어나 개념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속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는 그들의 자구적인 성서해석에 기인한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들은 기성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지찾아내 보라고 요구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간다. 또한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히브리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 삼위일체 교리가 시작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350년 후이며, 삼위일체라는 단일 용어는 성서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τριας라는 단어는  主後  180년 경의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Trinitas가 나타나지만 그 말 자체가 현재의 삼위일체의 개념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하면서 이 교리는  원래 바빌론에서 이교인들이 믿고  있던 신앙인데, 사도들이 죽은후 그리스도교에  흘러 들어와 떼르뚤리아노가 체계화시켰으며,  결국 성서에도 없는 이러한 개념을 서기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이기에 이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것도, 성서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갈라진 하느님,  3神으로서의 하느님.  곧 성부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자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 1/3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성경에는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거나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구절들이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이시라면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이 아버지가 그를 보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자기자신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또 예수께서 직접 “말세의 시간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코  13, 32)고 말하였고,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요한 14,28)고 하셨기에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또 하느님과 동등하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은 성령에 대해 ‘성령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라고 정의한다. 곧 성령은 한 위격, 또는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성령의 독립적인  위격을 부인하기 위해 성령에 대해 언급할 때 마다 ‘영’(spirit)이란 단어를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 그들은 마태오 3,11을 예로 들어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한다. 곧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셰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셰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는데 물(水)이 한 位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한의 예언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성취되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사도 2,48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활동력으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야 말이된다고 하면서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며, 하느님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것이기에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는 그리스도교는 종말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 아니다.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이 삼위일체이심은 마태오 28,19(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과 2고린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에서 드러난다. 또 창세기 1,26에  나타난 ‘엘로힘’의 복수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맞추어 교회는 從屬論, 樣態論,三神論 등을  배격하고 하느님께 오직 하나의 본질이 있으며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세 位의 개별적 자립존재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최종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계시의 결론이며  동시에 인간 구원을 위한 구원신비의 요약이자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체험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은 사랑자체로서 유일한  분이신데 언제나 아버지,아들,영으로서  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만약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칠 수 없다면, 그들이  즐겨 쓰는 神政이란 용어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7)  그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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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의 부정

2. 삼위일체의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이유는 삼위일체란 단어나 개념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속에 나타나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는 그들의 자구적인 성서해석에 기인한다. 실제로 여호와의 증인의 신도들은 기성교회의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할 때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지찾아내 보라고 요구하면서 토론을 주도해 나간다. 또한 이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히브리 예언자들과  사도들도 알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이 삼위일체 교리가 시작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후 350년 후이며, 삼위일체라는 단일 용어는 성서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τριας라는 단어는  主後  180년 경의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루스에게서  그  단어의  라틴어 형태인Trinitas가 나타나지만 그 말 자체가 현재의 삼위일체의 개념을 나타내지는 않는다고하면서 이 교리는  원래 바빌론에서 이교인들이 믿고  있던 신앙인데, 사도들이 죽은후 그리스도교에  흘러 들어와 떼르뚤리아노가 체계화시켰으며,  결국 성서에도 없는 이러한 개념을 서기 325년 니체아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이기에 이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된 것도, 성서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삼위일체  교리는 갈라진 하느님,  3神으로서의 하느님.  곧 성부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자 하느님이 1/3의 하느님, 성령 하느님이 1/3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있다. 또 이들은 성경에는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거나 동등한 존재가 아니라고 가르쳐 주는 구절들이 오히려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만약 예수님이 성부 하느님이시라면 ‘예수님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자신에게 기도한 것이 되고,  또 예수님이 아버지가 그를 보냈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가  자기자신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또 예수께서 직접 “말세의 시간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코  13, 32)고 말하였고,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십니다”(요한 14,28)고 하셨기에 예수는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 또 하느님과 동등하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고 주장한다. 한편 여호와의 증인은 성령에 대해 ‘성령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종들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이라고 정의한다. 곧 성령은 한 위격, 또는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활동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성령의 독립적인  위격을 부인하기 위해 성령에 대해 언급할 때 마다 ‘영’(spirit)이란 단어를 대문자로 쓰지 않는다. 그들은 마태오 3,11을 예로 들어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한다. 곧 세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셰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셰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는데 물(水)이 한 位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한의 예언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 예루살렘에 모인 추종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짐으로써 성취되었다. 이때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다’고 사도 2,48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한 인격체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활동력으로서의 성령’에 의해서 충만함을 받았다고 해야 말이된다고 하면서 성령의 위격성을 부인하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은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며, 하느님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것이기에 삼위일체 교리를 옹호하는 그리스도교는 종말에 심판받을 것이라고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비성서적이 아니다. 하느님의 내면적 본질이 삼위일체이심은 마태오 28,19(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과 2고린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에서 드러난다. 또 창세기 1,26에  나타난 ‘엘로힘’의 복수명칭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맞추어 교회는 從屬論, 樣態論,三神論 등을  배격하고 하느님께 오직 하나의 본질이 있으며 동시에 서로 구별되는 세 位의 개별적 자립존재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도로부터 최종적으로  계시된 하느님의 신비 곧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계시의 결론이며  동시에 인간 구원을 위한 구원신비의 요약이자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체험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느님은 사랑자체로서 유일한  분이신데 언제나 아버지,아들,영으로서  계시고 활동하시는 분이시다. 만약 여호와의 증인이 성서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이 삼위일체라고 가르칠 수 없다면, 그들이  즐겨 쓰는 神政이란 용어는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가?7)  그들은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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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Ⅲ.여호와의 증인의 교리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와 주장은 기존 그리스도교와 많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주로 성서해석,삼위일체,예수  그리스도의 선주성,영혼 불멸,지옥의 존재,부활,재림,말세에 대한 교리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장에서는 그 차이점이 어떠하며,어떤 점에서 오류가 있는지를 살펴 본다.   1.여호와의 증인의 성서 해석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1915년에 신약을 번역하였고, 구약은 이후 약 10년에 걸쳐서 부분판으로 번역되다가 1961년 신구약 합본성서, 즉 “새 세게 번역성경(New World  anslation of the Holy Scriptures)를 출판하였다. 이들은 새 세게 번역성서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발간한 성경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오역(誤譯)들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한다. 곧 전통적인 종교 입장을  지지하기 위한 모순되고 불합리한 번역들이 영감의 기록속으로 은근히 끼어 들어 하느님의 명령과 교훈들을 묻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1) 이에 반해 새 세계 번역성경이야말로 완전무결하게 번역된 성경이라고, 또 온전한 하느님의 말씀이며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한 유일한 표준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성경연구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알기 불충분하므로 워치타워의 유권적 해석에 따라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2) 그러나 새 세계 번역성서의 위원회는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으며,또 각 위원이 성경을 정확하게 번역하기 위해 필요한 분야의 학위를 갖고 있는지도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번역판의 신빙성이 자연 문제시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정통 성서학자들과 헬라어 학자들은  그들의 번역성서는 자기네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 자체로 성서의 내용을 가감했을 뿐 아니라, 오역으로 가득 차 있고 문법도 엉망이며 성서에 나타난  연대의 계산도 잘못되어 있다고 비판한다.3) 예컨대 세계적인신약성서 헬라어 학자인 줄리어스 알 만테이 박사(Dr.Julius R.Mantey)는 워치타워 성서 번역 위원회가  자기들의 비학문적인 번역을 지탱하기 위해 그를 권위자로  인용한데  대해  “영어로  번역된  헬라어의  오역이  많다. 예를  들어  요한 1,1;8,58; 골로사이서 1,15.16; 디도 2,13; 묵시록 3,14 등의 문법이 엉망이며, 따라서 나를 인용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내고 또  요한 복음 1,1이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워치타워 성서 위원회에 편지를 쓰기도 했다.4) 실제로 그들의 오류를 요한  1,1과 골로사이서 1,16 그리고 마태오 25,40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요한 1,1 –  여호와의 증인은 “맨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는 구절의 뒷 부분 곧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를 “그 말씀이 ‘하나의 신’이셨다”로 번역한다. 이 번역은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교리에 맞추어서  피조물의 위치로 좌천시키면서 하느님보다  못한 분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요한 1,1에 대한 문법적인 해석  역시 납득할 수 없다. 즉 그들에 의하면 요한 1,1에는 ‘θεος’가 2번 나오는데 정관사 ‘ὁ’가 첫번째  나오는  ‘θεος’ 앞에는 나오지만, 두 번째 나오는 θεος앞에는 붙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명사에 관사가 붙으면 신분,인물을 가리키며, 동사 앞에 나오는 단수 무관사 서술명사는 누군가의 특성을 가기킨다는 점에 비추어  “그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번역에 시종일관 적용된 것도 아니다. 요한 1,1-18까지를 보면, 하느님이라는  단어 곧 ‘θεος’가 정관사 없이 6회나 사용되었다(1,6,12,13 절에서 한  번씩, 그리고 18절에서 2번씩).  그런데 이들은 1절 뒷부분에 나오는 예수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θεος라는 단어를 모두 다 대문자로 하느님(God)이라고 번역하였다. 만일 여호와의  증인에서 번역한 것들이 모순없이 철저하게 번역된 것들이라면 6절 앞부분의  경우는 ‘한 신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라고 번역했어야 했다.그런데  그들은 왜 유독 1절에만 θεος(하느님)로 번역하기를 거부했는가 ?  그것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거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들이 오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 1,1을 ‘그 말씀은 하나의 신이셨다’라고 번역한 신세계역 성경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릇된  번역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것은 문법적으로도 그릇된 번역이다.5)  결국  그들은 ‘그 말씀은 하나의 신(a God)이셨다’라고 번역함으로써 그들의 사상이 다신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만 것이다.      2)골로사이서 1장 –  두 번째로 그들의 성서해석의 오류는 골로사이서 1장에서 찾을 수 있다. 골로사이서 1장에서 사도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창조주 되심을 강조함으로써 그분의 신성을 힘주어 말하고 있다. “만물은 그 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 분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로 1, 16). 그러나 신세계역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 중의하나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골로  1장의 ‘만물’이라는 단어 앞에 5회에 걸쳐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16절: (다른)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16절: (다른)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17절: 또한 그가 (다른)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다른) 만물이 그 안에 함께 계셨느니라. 20절: (다른)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은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위에 열거된 본문들에는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일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오히려 ‘다른’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그 구절들의 본래의 문맥을 파괴시키는 것이며, 그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것이다.6)      3) 마태오 25, 40 통치체 위주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마태  25, 40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곧 여호와의 증인은 “진실히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것이다”라는 말씀중에서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이 곧 통치체라고  하면서 통치체에 모든 것을 바쳐  잘하는 것이 곧 예수께 잘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통치체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한 자격으로  하느님의 우주 통치권을 상속받은  공동후사요, 공동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하는 것이나 예수께 하는 것이나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공동왕이라고 하는 통치체가 어떻게 지극히 작은 형제들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자연적으로 생기게 된다.7) 이상에서 살펴 본 것  이외에도 성서해석상의 오류는 수 없이 많이 드러난다.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서는 역사적 문화사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은  자의적,아전인수격 해석이며 ,따라서 자신들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보조자료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은 신도들이 개별적으로 성서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의식화시키고  있고, 이 의식화의 결과로 수 많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은 자신들의  성서와 통치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며, 나아가 선교활동에서도 이  성서를 가지고 기성교회 신자들과  토론한다. 따라서 성경토론은 항상 어느 성경이 옳은가? 하는 물음에로 귀착되고 만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살펴 보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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