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보관물: 2002-05-20

그리스도교에 대한 시각

(2) 그리스도교에 대한 시각 ① 비판 증산은 직접 예수교당에 찾아가서 여러 의례(儀禮)와 교리(敎理)를 보고 듣고 난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은 그리스도교가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다는 진단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신앙으로서 하느님 이외의 신격을 모두 부정하고 배척하는 종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면 제 조상신이나 제 나라의 민족신을 모두 부정하게 된다. 유대 민족의 신명들 이외에 모든 민족과 나라의 신명들에 대해서는 우상숭배라는 딱지를 붙여 일체 배척한다. 이러한 독선적인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매우 편협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이며, 그것은 제 조상과 제 나라의 민족신을 버리고 유대민족의 수호신과 유대인의 혈통과 가계(家系)에 편입되려는 신앙을 결과한다. 결국 남의 조상신을 모시고 자기의 조상신을 배척하는 외곬의 신앙태도를 신명박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명을 박대해서는 장차 성공할 수 없으며( – “이 시대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 잡히는 때니, 환부역조하는 자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신명대접을 잘한 조선에 성공의 운수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 증산의 주장이다. 실제로 예수교인은 증산과 관련된 인물들과의 교류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들로만 그려진다. ② 수용 “西有大聖人曰, 西學. 東有大聖人曰, 東學, 都是敎民化民…”『玄武經』 여기에서 증산은 서학을 서쪽에 있던 大聖人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종교로 평가하고 있다. 동학과 마찬가지로 성인의 가르침에 의해 이루어진 체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증산은 그리스도교를 진리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종교 체계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동일한 진리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절대자는 그 호칭만 다를 뿐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예수교도는 예수의 재강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또한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구원의 종교’라고 이해했음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증산의 그리스도교 수용은 성서를 불태운 것과 마테오 리치 신부의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성서를 불태운 것은 그리스도교가 신명을 박대하기에 족히 취할 것이 없는 것이라 하여 배척의 태도로 볼 수 있으나, 증산에 의해 신비스럽게 사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증산은 자신이 행한 천지공사에서 많은 종이와 책을 불사르는 종교적 행위를 누차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불사른 행위는 불태움의 의미 곧 ‘훼손시킨다, 없앤다’는 의미를 넘어, 그리스도교가 천지공사에 흡수되어 진정한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는 불완전했던 그리스도교를 천지공사라는 종교적 행위, 곧 주술적 행위를 통해 새로운 문명 건설을 위한 일에 참여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증산이 칭찬한 인물로서 증산교인들에게 중요한 인물로 믿어진다.  “매양 옛 사람을 評論하실 때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天師 가라사대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는 現 해원시대에 神明界의 주벽이 되며,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니라.”고 한 증산의 명령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믿어진다.  첫째, 마테오 리치 신부는 증산의 출세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마테오 리치가 주축이 된 신명들의 간절한 호소로 인해 증산이 지상에 出世하게 된 것이다. 둘째, 증산이 세상을 널리 살펴본 행위인 천하대순(天下大巡)에 유일한 동행자로 선임된 인물이다. 셋째, 마테오 리치에 의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틔워짐으로 인해 그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가능케 하고, 인간계와 신계의 경계를 없앤 최초의 인물’이며 ‘현대문명의 아버지’이다. 넷째, 증산에 의해 상제봉조라는 혈(穴)이름을 가진 광주 무등산에 영혼이 모셔지는 의식을 거침으로써, 上帝인 증산을 위해 계속 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마테오 리치는 일개 서양인 선교사의 입장이 아니라, 후천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종정(宗正) 곧 대표로써 선임되었고, 나아가 증산교 교리 체계에서 증산 다음가는 위치로까지 격상되어 있다. 증산은 그의 공로에 대해 “이마두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그러나 그 공덕을 은연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징보다 그리스도교 수용에서 특별한 점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강림(降臨)하였다는 증산의 설교와 자신이 인류의 모든 질병을 대속(代贖)한다고 주장한 것에 있다. 이는 예수께서 인간의 죄악을 구속(拘束)하고 지상의 평화를 위해 강림하였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상에서 증산 스스로도 언급했듯이, 증산교가 유불선과 동학, 민간신앙과 그리스도교를 혼합하여 만든 종교혼합주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특징이라면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 교의를 받아들이는데 반해, 민간신앙은 거의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간신앙이 하류 계층에게 가장 밀접히 내면화된 전통적 신앙체계일 뿐만 아니라,  증산교가 억압된 비엘리트를 중심으로 종교로 등장하였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온 체질화된 민간신앙을 기층(基層)으로 하여 그 위에 타종교의 이념을 복합적으로 성층화(成層化)시키게 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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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에 대한 시각

(2) 그리스도교에 대한 시각 ① 비판 증산은 직접 예수교당에 찾아가서 여러 의례(儀禮)와 교리(敎理)를 보고 듣고 난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결론은 그리스도교가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다는 진단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이러하다.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신앙으로서 하느님 이외의 신격을 모두 부정하고 배척하는 종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면 제 조상신이나 제 나라의 민족신을 모두 부정하게 된다. 유대 민족의 신명들 이외에 모든 민족과 나라의 신명들에 대해서는 우상숭배라는 딱지를 붙여 일체 배척한다. 이러한 독선적인 태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매우 편협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이며, 그것은 제 조상과 제 나라의 민족신을 버리고 유대민족의 수호신과 유대인의 혈통과 가계(家系)에 편입되려는 신앙을 결과한다. 결국 남의 조상신을 모시고 자기의 조상신을 배척하는 외곬의 신앙태도를 신명박대라고 표현한 것이다. 신명을 박대해서는 장차 성공할 수 없으며( – “이 시대는 원시반본하는 시대라, 혈통줄이 바로 잡히는 때니, 환부역조하는 자와 환골하는 자는 다 죽으리라.”-), 신명대접을 잘한 조선에 성공의 운수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 증산의 주장이다. 실제로 예수교인은 증산과 관련된 인물들과의 교류에서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들로만 그려진다. ② 수용 “西有大聖人曰, 西學. 東有大聖人曰, 東學, 都是敎民化民…”『玄武經』 여기에서 증산은 서학을 서쪽에 있던 大聖人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종교로 평가하고 있다. 동학과 마찬가지로 성인의 가르침에 의해 이루어진 체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증산은 그리스도교를 진리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종교 체계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동일한 진리의 다른 표현이라고 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절대자는 그 호칭만 다를 뿐이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하루는 종도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예수교도는 예수의 재강림을 기다리고, 불교도는 미륵의 출세를 기다리고, 동학신도는 최수운의 갱생을 기다리나니, 누구든지 한 사람만 오면 각기 저의 스승이라 하여 따르리라.”  또한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구원의 종교’라고 이해했음을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증산의 그리스도교 수용은 성서를 불태운 것과 마테오 리치 신부의 언급에서도 드러난다.  성서를 불태운 것은 그리스도교가 신명을 박대하기에 족히 취할 것이 없는 것이라 하여 배척의 태도로 볼 수 있으나, 증산에 의해 신비스럽게 사용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증산은 자신이 행한 천지공사에서 많은 종이와 책을 불사르는 종교적 행위를 누차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불사른 행위는 불태움의 의미 곧 ‘훼손시킨다, 없앤다’는 의미를 넘어, 그리스도교가 천지공사에 흡수되어 진정한 이상세계를 실현하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독립적으로는 불완전했던 그리스도교를 천지공사라는 종교적 행위, 곧 주술적 행위를 통해 새로운 문명 건설을 위한 일에 참여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증산이 칭찬한 인물로서 증산교인들에게 중요한 인물로 믿어진다.  “매양 옛 사람을 評論하실 때 강태공, 석가모니, 관운장, 이마두를 칭찬하시니라”  “天師 가라사대 이마두(마테오 리치 신부)는 現 해원시대에 神明界의 주벽이 되며, 항상 내 곁에서 나를 보좌하여 모든 것을 맡아보고 있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니라.”고 한 증산의 명령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믿어진다.  첫째, 마테오 리치 신부는 증산의 출세에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마테오 리치가 주축이 된 신명들의 간절한 호소로 인해 증산이 지상에 出世하게 된 것이다. 둘째, 증산이 세상을 널리 살펴본 행위인 천하대순(天下大巡)에 유일한 동행자로 선임된 인물이다. 셋째, 마테오 리치에 의해 하늘과 땅의 경계가 틔워짐으로 인해 그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가능케 하고, 인간계와 신계의 경계를 없앤 최초의 인물’이며 ‘현대문명의 아버지’이다. 넷째, 증산에 의해 상제봉조라는 혈(穴)이름을 가진 광주 무등산에 영혼이 모셔지는 의식을 거침으로써, 上帝인 증산을 위해 계속 봉사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하여 마테오 리치는 일개 서양인 선교사의 입장이 아니라, 후천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종정(宗正) 곧 대표로써 선임되었고, 나아가 증산교 교리 체계에서 증산 다음가는 위치로까지 격상되어 있다. 증산은 그의 공로에 대해 “이마두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그러나 그 공덕을 은연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징보다 그리스도교 수용에서 특별한 점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강림(降臨)하였다는 증산의 설교와 자신이 인류의 모든 질병을 대속(代贖)한다고 주장한 것에 있다. 이는 예수께서 인간의 죄악을 구속(拘束)하고 지상의 평화를 위해 강림하였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대단히 유사하다.  이상에서 증산 스스로도 언급했듯이, 증산교가 유불선과 동학, 민간신앙과 그리스도교를 혼합하여 만든 종교혼합주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 특징이라면 기성종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 교의를 받아들이는데 반해, 민간신앙은 거의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간신앙이 하류 계층에게 가장 밀접히 내면화된 전통적 신앙체계일 뿐만 아니라,  증산교가 억압된 비엘리트를 중심으로 종교로 등장하였기 때문에 이들에게 전통적으로 전승되어온 체질화된 민간신앙을 기층(基層)으로 하여 그 위에 타종교의 이념을 복합적으로 성층화(成層化)시키게 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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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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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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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민간신앙, 그리스도교적 측면

3) 동학적 측면 동학에 대해서는 동학이 보국안민을 주창하였으나 속으로는 각기 왕후장상을 바랐다고 비판함으로써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하였다. 또한 능히 유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학의 경문인 시천주(侍天呪)와 수운가사(水雲歌詞)를 자주 추종자들에게 읽게 하거나 또는 인용함으로써 동학의 여러 경문을 자신의 종교예식에 포함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민족적 사상체계에서 증산교는 동학의 뒤를 따른다고 하였다.증산교는 동학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동학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동학과 거의 同時代라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4) 선교 및 민간신앙적 측면 仙敎를 비롯한 재래 민간신앙에 대해서는 그 입장을 약간 달리한다. 그는 정감록을 수차에 걸쳐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천지공사의 의식에 있어서 주술과 부적을 사용하며 여러 신명에게 축원하는 등 각종 주술적 행위를 하는 동시에 수련공부로써 인간이 신명과 동화하여 신통묘술을 행할 수 있으며 장생불사하는 후천선경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여 선교의 도술조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주역(周易)과 해인(海印)과 묘(墓)의 발음(發陰)을 인정하였으며 고사와 굿을 행하였고 기우제를 지냈다.  그리고 그는 先․後天이 교역하는 운도에 의하여 개벽의 공사를 보며, 이에 따라 조선을 세계의 종주국으로 하는 신정부가 열린다고 하였다. 또한 자신이 개벽의 공사를 지운(地運)에 맞추어 보았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神道를 중심으로 하여 ‘신묘불측한 도술조화’를 한다고 하여 재래 민간신앙을 거의 모두 자신의 종교와 관련시켰다.  따라서 증산의 해원은 무속에서 말하는 살풀이, 액풀이, 한풀이 등을 한자말로 바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규모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무당은 보통 한 가족의 조상신을 대상으로 하여 원한을 품은 조상신을 달래 소재구복(消災求福)하는 역할을 하였으나, 증산은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정치적․문화적․전쟁의 영웅들, 즉 수운, 전봉준, 주희, 마테오 리치, 관우 같은 영들을 주로 상대하여 천지공사를 통해 유토피아적 후천세계를 열려고 한 것이다.  해원사상에 있어 증산의 특이한 점은 해원과 보은(報恩)을 연결시킨 것이다. 무당의 굿은 대체로 원령들을 달래어 더 이상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증산의 경우는 일단 그에 의해 해원이 된 영은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증산이 하는 천지공사 등의 작업을 도와주는 것이 그것이다. 예컨대 증산교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神明인 마테오 리치는 증산에 의하면 동양에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는 일이 실패로 되고 더 나아가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에 큰 한을 품고 죽었다고 하는데, 증산이 그를 해원시키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영계의 조화정부(統一神團)에서 그리스도교에 관한 모든 일을 맡아 증산의 일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증산의 우주관과 그 우주의 주역인 신명들에 대한 견해는 巫俗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특히 증산교의 신관은 무속의 신관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명부십왕(冥府十王)․황천신(黃泉神)․칠성사자(七星使者)․삼신(三神)․지신(地神)․산왕(山王)․용왕(龍王)․이십사절후장(二十四 節候裝) 등의 용어나 문명신(文明神)․조선신명(朝鮮神明)․서양신명(西洋神明) 등의 개념은 바로 무속적 신관의 표현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에는 神이나 신명이 깃들어 있다는 관점과, 인간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무속의 신명관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무속에서는 인간이 신명보다 다소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증산의 신관에서는 인간이 신보다 우위에 있으며, 신명은 단지 조력자에 그친다는 것과, 무속에서의 신들은 대부분 가상적인 존재인데 비해 증산교에서 지칭하는 신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 세상에 현존했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5) 그리스도교적 측면 증산은 기독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예식을 본 후 “족히 취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西敎는 신명박대(神明薄待)가 심하므로 능히 성공치 못하리라”고 하며 상당히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는 마테오 리치를 칭찬하고 자기를 구천상제로 강세한 구세주로 자칭함으로써 기독교의 再臨主思想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하에서 서양과 그리스도교에 관한 증산의 시각을 각기 살펴본다. (1) 서양에 대한 시각  증산은 서양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대결을 지양하여 새로운 가르침으로 포용하려는 것이다. 그는 서양을 비를 내리게 하는 원천이며, 강력한 힘을 지닌 장소로 생각하고, 그들이 발명한 文明利器가 앞으로의 인류생활에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증산은 동양의 정신우위론에 입각하여 마테오 리치, 진묵대사라는 두 문화영웅을 통해 현실적인 서양문명의 우위를 종교적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마테오 리치의 전도활동과 불교승려인 진묵의 설화를 서양문명에 대한 종교적 설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테오 리치가 동양에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에 동양의 문명신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다. 그로 인해 동양과 서양, 하늘과 땅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되었다. 이에 지하신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묘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현대의 문명이라.”(大巡典經 5:12)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봉곡의 질투로 인해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화계발에 역사하였나니…(大巡典經 5-13) 여기에서 증산은 동양이 서양문화의 근원임을 역설하고 있다. 즉 서양은 동양 신명들의 도움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며, 기본적으로 천상 문명을 본받은 세계로 믿어진다. 현실적으로 발전한 서양문명은 실은 동양의 문명신과 도통신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증산교인들은 믿고 있는 것이다. 또한 증산은 서양 문명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문명은 물질과 사리에만 밝아 교만과 잔폭(殘暴)을 길러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써 모든 죄악을 거리낌없이 범행하니, 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大巡典經 5:12) 따라서 전세계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고 해결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다. 증산은 이것이 서양문명의 한계라고 보았다. 마테오 리치 신부와 진묵대사는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증산에게 구원을 호소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양문명의 한계성에 대해 그는 동양과 서양이 맡은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양은 기예(技藝)의 역할을 맡았고, 동양은 조화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서양은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고, 동양은 조화로써 물질문명의 한계를 통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화로써 더 건전하고 건강한 문명으로 비약케 하는 것이 동양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증산은 서양세력을 물리쳐야할 세력으로 보고 있다. 동양이 서양의 나쁜 점에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종교적 행동으로 서양을 물리침으로써 서양에 물드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러일(露日)전쟁을 붙여 일본을 도와 러시아를 물리치리라.”(大巡典經 4-9)라고 말했으며, 동남풍을 불게 만들어 일본이 승리하도록 도왔다고 주장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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