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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보관물: 2002년 5월월
제의 – 굿
(4) 제의 무祭儀인 굿은 가정을 단위로 하는 개인제(個人祭)와 마을을 단위로 하는 동제(洞祭)로 구별된다. 윤씨가 하고 있는 굿은 개인제로 재수굿, 안택굿, 성주굿, 환자굿, 신굿이 있고, 洞祭로 서낭굿, 龍神굿(豊漁祭)등이 있다. 가. 재수굿 이 굿을 성주굿, 축원굿, 도신굿이라고도 한다. 도신굿이란 명칭은 특히 영남의 남부지역에서 많이 쓰인다. 재수굿은 민가에서 행운, 초복의 목적으로 3년마다 한번씩(필요에 따라서는 수시로 할 수 있다)하는 굿인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地神)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으로 한다. 이상과 같은 굿의 진행 순서가 기본이 되어 다른 굿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나. 안택굿 이 굿은 민가에서 매년 정초에 그 해의 행운과 초복을 위해 하는 굿으로 그 진행순서는 앞의 재수굿과 같다. 다. 성주굿 이 굿은 이사를 가거나 집을 새로 지어서 들어가 살 때, 그 집의 최고 가신인 성주신을 새로 봉안하는 의식이다. 祭儀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산신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인데, 무장(巫裝)이나 굿악기, 무가무 등의 굿 진행이 앞의 재수굿과 동일하다. 단지 네 번째의 성주굿에 역점을 두어 성주봉안과정이 다르다. 라. 환자굿 이 굿은 <병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환자가 생겼을 때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굿인데, 그 진행순서를 보면,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망자굿 → 칠성굿 → 산신굿 → 성주굿 → 대감굿 → 말명굿 → 장군굿 → 발원굿 → 꽃노래굿 → 거리풀이 순이다. 여기서도 앞의 재수굿에서 본 굿의 과정이 기본이 되고 그 외로 몇 과정이 더 추가되는데, 주로 망자에 관계된 의식이 추가된 것을 보면 병의 원인을 망자의 원한에 의한 것으로 보고 그 해원(解寃)에 역점을 둔 느낌이 있다. 마. 神굿 이 굿은 神이 내린 사람이 神을 받아 巫가 되는 강신제이다. 그 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칠성굿 → 산신굿 → 대감굿 → 말명굿 → 성주굿 → 거리풀이 순이다. 이 굿의 진행도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다섯 번째의 산신굿에서 강신의식을 한다. 산신굿에서 강신자에게 巫服인 쾌자를 입히고 왼손에 방울, 오른손에 부채를 들려서 무락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 이 때의 무락은 장고, 징, 꽹과리, 제팔이가 맹렬하게 울린다. 무락에 맞추어 강신자가 춤을 추다가 왼손의 방울로부터 진동이 오면서 이 진동이 전신으로 확대되어 神이 내린다. 그러면서 강신자가 <말문>이 열려 강신된 神名을 부르면서 <공수>를 내린다. 강신자는 이렇게하여 받은 神을 종이에다 붓으로 神名을 써서 벽에 붙이고 방을 내서 神壇을 만들어 봉안시켜 놓고 매일 옥구(玉求)를 바치면서 神굿을 해준 선생巫를 따라다니며 굿하는 것을 배워 후에 巫로 독립한다. 바. 서낭굿 이 굿을 <별신굿>이라고도 한다. 이 굿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신앙하는 서낭당에 가서 동민들이 제를 올린 다음 당(堂)에서 굿을 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동민 전체의 평안과 주민들의 생업인 농업 또는 어업의 기풍을 위한 것이다. 서낭굿은 堂에서 제를 끝낸 다음에 동민이 堂으로 모여서 巫의 굿으로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시준굿 → 산신굿 → 용신굿 → 축원굿 → 거리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이 굿 역시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굿의 장소가 민가가 아닌 서낭堂이라는 점과 또 마을의 공동祭儀라는 점이 다르다. 사. 용신굿(풍어제) 이 굿은 해안지대의 어민들이 용신에게 고기를 많이 잡고 해상 사고가 없기를 비는 어촌민들의 공동제다. 그래서 이 굿을 풍어제라고도 한다. 용신굿은 堂祭가 끝나면 이튿날인 밝은 날 아침에 부두로 나가 차일(遮日, 볕을 가림)을 치고 굿상을 차린 다음 풍어제굿이 진행되는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시준굿 → 서낭마지굿 → 조상굿 → 성주굿 → 침청(沈淸)굿 → 장수굿(軍雄굿) → 용신굿 → 손님굿 → 제면굿 → 거리풀이 순이다. 풍어제는 굿의 제장(祭場)이 바닷가 부두라는 점과 제장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堂에 가서 서낭신을 맞아 온다는 점이 앞의 서낭굿과 다르고, 특히 용신굿 과정에서는 사해용왕상(四海龍王床)을 따로 차리고 巫가 활옷을 입고 물동이를 탄다. 이 때 어업을 하는 선주들이 각기 자기 집에서 상을 차려다 사해용왕상 앞에 놓고 절을 하면서 풍어를 기원한다. (5) 巫의 環境 윤 을득씨는 남편 김씨와 함께 살면서 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슬하에는 남, 녀간 자식이 하나도 없다. 윤씨와 단골을 맺은 수양자는 약 70명인데, 음력 9월 9일과 음력 정월 15일에 치성을 드려준다. 치성드리는 방법은 巫가 神壇에 떡시루를 올리고 수양자 개인마다 식기에 쌀을 떠서 초를 박아 불을 켜서 神壇 앞에 놓고 축원을 한 다음 소지(燒紙)를 올려주고, 타는 촛불을 보고 1년간의 신수(身數)를 보아 예언해준다.
제의 – 굿
(4) 제의 무祭儀인 굿은 가정을 단위로 하는 개인제(個人祭)와 마을을 단위로 하는 동제(洞祭)로 구별된다. 윤씨가 하고 있는 굿은 개인제로 재수굿, 안택굿, 성주굿, 환자굿, 신굿이 있고, 洞祭로 서낭굿, 龍神굿(豊漁祭)등이 있다. 가. 재수굿 이 굿을 성주굿, 축원굿, 도신굿이라고도 한다. 도신굿이란 명칭은 특히 영남의 남부지역에서 많이 쓰인다. 재수굿은 민가에서 행운, 초복의 목적으로 3년마다 한번씩(필요에 따라서는 수시로 할 수 있다)하는 굿인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地神)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으로 한다. 이상과 같은 굿의 진행 순서가 기본이 되어 다른 굿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나. 안택굿 이 굿은 민가에서 매년 정초에 그 해의 행운과 초복을 위해 하는 굿으로 그 진행순서는 앞의 재수굿과 같다. 다. 성주굿 이 굿은 이사를 가거나 집을 새로 지어서 들어가 살 때, 그 집의 최고 가신인 성주신을 새로 봉안하는 의식이다. 祭儀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산신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인데, 무장(巫裝)이나 굿악기, 무가무 등의 굿 진행이 앞의 재수굿과 동일하다. 단지 네 번째의 성주굿에 역점을 두어 성주봉안과정이 다르다. 라. 환자굿 이 굿은 <병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환자가 생겼을 때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굿인데, 그 진행순서를 보면,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망자굿 → 칠성굿 → 산신굿 → 성주굿 → 대감굿 → 말명굿 → 장군굿 → 발원굿 → 꽃노래굿 → 거리풀이 순이다. 여기서도 앞의 재수굿에서 본 굿의 과정이 기본이 되고 그 외로 몇 과정이 더 추가되는데, 주로 망자에 관계된 의식이 추가된 것을 보면 병의 원인을 망자의 원한에 의한 것으로 보고 그 해원(解寃)에 역점을 둔 느낌이 있다. 마. 神굿 이 굿은 神이 내린 사람이 神을 받아 巫가 되는 강신제이다. 그 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칠성굿 → 산신굿 → 대감굿 → 말명굿 → 성주굿 → 거리풀이 순이다. 이 굿의 진행도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다섯 번째의 산신굿에서 강신의식을 한다. 산신굿에서 강신자에게 巫服인 쾌자를 입히고 왼손에 방울, 오른손에 부채를 들려서 무락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 이 때의 무락은 장고, 징, 꽹과리, 제팔이가 맹렬하게 울린다. 무락에 맞추어 강신자가 춤을 추다가 왼손의 방울로부터 진동이 오면서 이 진동이 전신으로 확대되어 神이 내린다. 그러면서 강신자가 <말문>이 열려 강신된 神名을 부르면서 <공수>를 내린다. 강신자는 이렇게하여 받은 神을 종이에다 붓으로 神名을 써서 벽에 붙이고 방을 내서 神壇을 만들어 봉안시켜 놓고 매일 옥구(玉求)를 바치면서 神굿을 해준 선생巫를 따라다니며 굿하는 것을 배워 후에 巫로 독립한다. 바. 서낭굿 이 굿을 <별신굿>이라고도 한다. 이 굿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신앙하는 서낭당에 가서 동민들이 제를 올린 다음 당(堂)에서 굿을 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동민 전체의 평안과 주민들의 생업인 농업 또는 어업의 기풍을 위한 것이다. 서낭굿은 堂에서 제를 끝낸 다음에 동민이 堂으로 모여서 巫의 굿으로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시준굿 → 산신굿 → 용신굿 → 축원굿 → 거리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이 굿 역시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굿의 장소가 민가가 아닌 서낭堂이라는 점과 또 마을의 공동祭儀라는 점이 다르다. 사. 용신굿(풍어제) 이 굿은 해안지대의 어민들이 용신에게 고기를 많이 잡고 해상 사고가 없기를 비는 어촌민들의 공동제다. 그래서 이 굿을 풍어제라고도 한다. 용신굿은 堂祭가 끝나면 이튿날인 밝은 날 아침에 부두로 나가 차일(遮日, 볕을 가림)을 치고 굿상을 차린 다음 풍어제굿이 진행되는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시준굿 → 서낭마지굿 → 조상굿 → 성주굿 → 침청(沈淸)굿 → 장수굿(軍雄굿) → 용신굿 → 손님굿 → 제면굿 → 거리풀이 순이다. 풍어제는 굿의 제장(祭場)이 바닷가 부두라는 점과 제장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堂에 가서 서낭신을 맞아 온다는 점이 앞의 서낭굿과 다르고, 특히 용신굿 과정에서는 사해용왕상(四海龍王床)을 따로 차리고 巫가 활옷을 입고 물동이를 탄다. 이 때 어업을 하는 선주들이 각기 자기 집에서 상을 차려다 사해용왕상 앞에 놓고 절을 하면서 풍어를 기원한다. (5) 巫의 環境 윤 을득씨는 남편 김씨와 함께 살면서 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슬하에는 남, 녀간 자식이 하나도 없다. 윤씨와 단골을 맺은 수양자는 약 70명인데, 음력 9월 9일과 음력 정월 15일에 치성을 드려준다. 치성드리는 방법은 巫가 神壇에 떡시루를 올리고 수양자 개인마다 식기에 쌀을 떠서 초를 박아 불을 켜서 神壇 앞에 놓고 축원을 한 다음 소지(燒紙)를 올려주고, 타는 촛불을 보고 1년간의 신수(身數)를 보아 예언해준다.
제의 – 굿
(4) 제의 무祭儀인 굿은 가정을 단위로 하는 개인제(個人祭)와 마을을 단위로 하는 동제(洞祭)로 구별된다. 윤씨가 하고 있는 굿은 개인제로 재수굿, 안택굿, 성주굿, 환자굿, 신굿이 있고, 洞祭로 서낭굿, 龍神굿(豊漁祭)등이 있다. 가. 재수굿 이 굿을 성주굿, 축원굿, 도신굿이라고도 한다. 도신굿이란 명칭은 특히 영남의 남부지역에서 많이 쓰인다. 재수굿은 민가에서 행운, 초복의 목적으로 3년마다 한번씩(필요에 따라서는 수시로 할 수 있다)하는 굿인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地神)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으로 한다. 이상과 같은 굿의 진행 순서가 기본이 되어 다른 굿도 동일하게 진행된다. 나. 안택굿 이 굿은 민가에서 매년 정초에 그 해의 행운과 초복을 위해 하는 굿으로 그 진행순서는 앞의 재수굿과 같다. 다. 성주굿 이 굿은 이사를 가거나 집을 새로 지어서 들어가 살 때, 그 집의 최고 가신인 성주신을 새로 봉안하는 의식이다. 祭儀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산신굿 → 칠성굿 → 말명굿 → 거리풀이 순인데, 무장(巫裝)이나 굿악기, 무가무 등의 굿 진행이 앞의 재수굿과 동일하다. 단지 네 번째의 성주굿에 역점을 두어 성주봉안과정이 다르다. 라. 환자굿 이 굿은 <병굿>이라 부르기도 한다. 즉 환자가 생겼을 때 병을 고치기 위해서 하는 굿인데, 그 진행순서를 보면,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망자굿 → 칠성굿 → 산신굿 → 성주굿 → 대감굿 → 말명굿 → 장군굿 → 발원굿 → 꽃노래굿 → 거리풀이 순이다. 여기서도 앞의 재수굿에서 본 굿의 과정이 기본이 되고 그 외로 몇 과정이 더 추가되는데, 주로 망자에 관계된 의식이 추가된 것을 보면 병의 원인을 망자의 원한에 의한 것으로 보고 그 해원(解寃)에 역점을 둔 느낌이 있다. 마. 神굿 이 굿은 神이 내린 사람이 神을 받아 巫가 되는 강신제이다. 그 진행순서는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칠성굿 → 산신굿 → 대감굿 → 말명굿 → 성주굿 → 거리풀이 순이다. 이 굿의 진행도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다섯 번째의 산신굿에서 강신의식을 한다. 산신굿에서 강신자에게 巫服인 쾌자를 입히고 왼손에 방울, 오른손에 부채를 들려서 무락에 맞추어 춤을 추게 한다. 이 때의 무락은 장고, 징, 꽹과리, 제팔이가 맹렬하게 울린다. 무락에 맞추어 강신자가 춤을 추다가 왼손의 방울로부터 진동이 오면서 이 진동이 전신으로 확대되어 神이 내린다. 그러면서 강신자가 <말문>이 열려 강신된 神名을 부르면서 <공수>를 내린다. 강신자는 이렇게하여 받은 神을 종이에다 붓으로 神名을 써서 벽에 붙이고 방을 내서 神壇을 만들어 봉안시켜 놓고 매일 옥구(玉求)를 바치면서 神굿을 해준 선생巫를 따라다니며 굿하는 것을 배워 후에 巫로 독립한다. 바. 서낭굿 이 굿을 <별신굿>이라고도 한다. 이 굿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신앙하는 서낭당에 가서 동민들이 제를 올린 다음 당(堂)에서 굿을 하는 것인데, 그 목적은 동민 전체의 평안과 주민들의 생업인 농업 또는 어업의 기풍을 위한 것이다. 서낭굿은 堂에서 제를 끝낸 다음에 동민이 堂으로 모여서 巫의 굿으로 부정굿 → 서낭굿 → 조상굿 → 성주굿 → 지신굿 → 시준굿 → 산신굿 → 용신굿 → 축원굿 → 거리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이 굿 역시 앞의 재수굿과 같으나 굿의 장소가 민가가 아닌 서낭堂이라는 점과 또 마을의 공동祭儀라는 점이 다르다. 사. 용신굿(풍어제) 이 굿은 해안지대의 어민들이 용신에게 고기를 많이 잡고 해상 사고가 없기를 비는 어촌민들의 공동제다. 그래서 이 굿을 풍어제라고도 한다. 용신굿은 堂祭가 끝나면 이튿날인 밝은 날 아침에 부두로 나가 차일(遮日, 볕을 가림)을 치고 굿상을 차린 다음 풍어제굿이 진행되는데 그 순서는 부정굿 → 시준굿 → 서낭마지굿 → 조상굿 → 성주굿 → 침청(沈淸)굿 → 장수굿(軍雄굿) → 용신굿 → 손님굿 → 제면굿 → 거리풀이 순이다. 풍어제는 굿의 제장(祭場)이 바닷가 부두라는 점과 제장이 바닷가이기 때문에 堂에 가서 서낭신을 맞아 온다는 점이 앞의 서낭굿과 다르고, 특히 용신굿 과정에서는 사해용왕상(四海龍王床)을 따로 차리고 巫가 활옷을 입고 물동이를 탄다. 이 때 어업을 하는 선주들이 각기 자기 집에서 상을 차려다 사해용왕상 앞에 놓고 절을 하면서 풍어를 기원한다. (5) 巫의 環境 윤 을득씨는 남편 김씨와 함께 살면서 무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다. 슬하에는 남, 녀간 자식이 하나도 없다. 윤씨와 단골을 맺은 수양자는 약 70명인데, 음력 9월 9일과 음력 정월 15일에 치성을 드려준다. 치성드리는 방법은 巫가 神壇에 떡시루를 올리고 수양자 개인마다 식기에 쌀을 떠서 초를 박아 불을 켜서 神壇 앞에 놓고 축원을 한 다음 소지(燒紙)를 올려주고, 타는 촛불을 보고 1년간의 신수(身數)를 보아 예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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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지방과 강원도 지방
나. 무의 활동범위 이씨의 무업활동범위는 부여, 서천(舒川), 장항(長項) 등지이며, 배에 관계되는 굿이 나면 안면도(安眠島)까지 다닌다. 또 마을의 관혼상제가 있을 때는 巫祭儀를 집행하는데, 주로 혼인에 관계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씨의 수양자는 30명 가량된다. 다. 巫의 社會的 結合 이씨는 巫의 사회단체에는 관여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Ⅱ. 령동지역의 무속 영동지역에서는 거진, 고성, 강릉과 삼척지역이며, 강원도 내륙지역에서는 춘천, 인제(麟蹄), 양구, 원주 등지이나, 성격적인 면에서 볼 때 서울, 경기지역의 巫俗과 大同小異한 실정이다. 1. 강원도 고성지역 (1) 巫의 身上 윤 을득(尹 乙得)은 25세 때 남편 김 관이(男, 화랭이, 71세)의 소실(小室)로 시집와서 37세 때 神이 내렸다. 윤 을득씨는 남편 김 관이씨에게서 巫를 배웠다. (2) 成巫過程 가. 降神體驗 윤씨는 37세 때 우연히 시름시름 앓아서 밥을 못 먹고 바짝 말라서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미친 증세가 일어났다. 占을 해 보니 神이 내렸다하여 42세 때 神굿(降神굿)을하여 神을 받았다. 그러나 굿을 하는 巫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굿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1개월 동안 7형제중 5명이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2명도 마저 죽자 이와 같은 현상이 모두 神이 시키는 조화라고 생각하여 巫가 되었다. 나. 巫의 學習 이와 같은 체험을 하면서 윤씨는 神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듬해인 42세 때부터 남편 김씨의 굿하는 곳에 따라 다니며 굿하는 절차 – 굿 차리는 법, 춤추는 법, 무가사설 -을 배워서 남편 김씨와 함께 굿하러 다니게 되었다. (3) 신단 및 무구 가. 神壇의 形態 윤씨는 神房을 따로 내지 않고 그들 부부가 거하는 안방의 윗목벽에다 나무 장을 놓고 그 속에 <오구 대왕(大王)>과 <칠성(七星)>의 巫神圖 2매를 걸고 그 앞에 촛대 둘, 옥수단지 둘을 놓았다. 그리고 이 촛대를 놓는 그 선반 밑에 적색 천으로 주렴을 느리고 그 속에 巫具를 넣어 둔다. 巫神圖의 크기나 색채는 앞의 서울 지역과 비슷하다. 나. 巫神像 巫神像은 위에 언급한 대로 <오구 대왕>과 <칠성> 巫神圖 2매가 있다. 다. 巫樂器 굿에 사용되는 巫樂器는 장고, 징, 제팔이(제금), 꽹괄이의 4종이다. 징과 제팔이 그리고 꽹괄이는 앞에서 본 서울 지역의 것과 같다. 라. 巫服 윤씨가 굿할 때 神服으로 입는 巫服은 쾌자와 활옷의 2종이다. 쾌자는 굿의 전 과정에서 사용되나, 활옷을 큰 굿의 과정 – 시준굿, 용신굿 -에서만 입는다. 마. 其他 이외에 윤씨가 사용하는 巫具로는 방울, 부채, 대신칼, 명두, 명두바릿대가 있다. 방울은 굿에서 강신용으로 巫가 손에 드는 것이고, 부채는 巫가 굿에서 가무할 때 손에 드는 것이다. 대신칼 용도는 잡귀를 위협하여 쫓는 것으로 굿의 첫 번째 과정인 부정굿에서 巫가 사용하고, 굿의 맨끝 과정인 거리풀이에서 화랭이가 대신칼을 들고 서서 잡귀를 퇴송(退送)하는 巫歌를 구송(口誦)한다. 명두는 巫占具로 사용하는 것인데, 명두의 사용방법은 명두바릿대(직경 25cm, 높이 13cm의 작은 나무함지박에 참쌀을 가득 채워 놓은 것)에 명두를 꽂아 놓고 축원하면서 소원을 고하고 명두바릿대에서 명두를 뽑아 쌀이 붙어 있는 수를 보고 점괘를 푼다. 이 때 명두 안쪽에 붙어 있는 쌀의 수가 짝수로 떨어지면 不吉하고, 홀수로 떨어지면 吉한 괘(掛)가 된다.
영도지방과 강원도 지방
나. 무의 활동범위 이씨의 무업활동범위는 부여, 서천(舒川), 장항(長項) 등지이며, 배에 관계되는 굿이 나면 안면도(安眠島)까지 다닌다. 또 마을의 관혼상제가 있을 때는 巫祭儀를 집행하는데, 주로 혼인에 관계되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씨의 수양자는 30명 가량된다. 다. 巫의 社會的 結合 이씨는 巫의 사회단체에는 관여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Ⅱ. 령동지역의 무속 영동지역에서는 거진, 고성, 강릉과 삼척지역이며, 강원도 내륙지역에서는 춘천, 인제(麟蹄), 양구, 원주 등지이나, 성격적인 면에서 볼 때 서울, 경기지역의 巫俗과 大同小異한 실정이다. 1. 강원도 고성지역 (1) 巫의 身上 윤 을득(尹 乙得)은 25세 때 남편 김 관이(男, 화랭이, 71세)의 소실(小室)로 시집와서 37세 때 神이 내렸다. 윤 을득씨는 남편 김 관이씨에게서 巫를 배웠다. (2) 成巫過程 가. 降神體驗 윤씨는 37세 때 우연히 시름시름 앓아서 밥을 못 먹고 바짝 말라서 자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미친 증세가 일어났다. 占을 해 보니 神이 내렸다하여 42세 때 神굿(降神굿)을하여 神을 받았다. 그러나 굿을 하는 巫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굿을 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1개월 동안 7형제중 5명이 병으로 죽고 그 뒤를 이어 나머지 2명도 마저 죽자 이와 같은 현상이 모두 神이 시키는 조화라고 생각하여 巫가 되었다. 나. 巫의 學習 이와 같은 체험을 하면서 윤씨는 神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듬해인 42세 때부터 남편 김씨의 굿하는 곳에 따라 다니며 굿하는 절차 – 굿 차리는 법, 춤추는 법, 무가사설 -을 배워서 남편 김씨와 함께 굿하러 다니게 되었다. (3) 신단 및 무구 가. 神壇의 形態 윤씨는 神房을 따로 내지 않고 그들 부부가 거하는 안방의 윗목벽에다 나무 장을 놓고 그 속에 <오구 대왕(大王)>과 <칠성(七星)>의 巫神圖 2매를 걸고 그 앞에 촛대 둘, 옥수단지 둘을 놓았다. 그리고 이 촛대를 놓는 그 선반 밑에 적색 천으로 주렴을 느리고 그 속에 巫具를 넣어 둔다. 巫神圖의 크기나 색채는 앞의 서울 지역과 비슷하다. 나. 巫神像 巫神像은 위에 언급한 대로 <오구 대왕>과 <칠성> 巫神圖 2매가 있다. 다. 巫樂器 굿에 사용되는 巫樂器는 장고, 징, 제팔이(제금), 꽹괄이의 4종이다. 징과 제팔이 그리고 꽹괄이는 앞에서 본 서울 지역의 것과 같다. 라. 巫服 윤씨가 굿할 때 神服으로 입는 巫服은 쾌자와 활옷의 2종이다. 쾌자는 굿의 전 과정에서 사용되나, 활옷을 큰 굿의 과정 – 시준굿, 용신굿 -에서만 입는다. 마. 其他 이외에 윤씨가 사용하는 巫具로는 방울, 부채, 대신칼, 명두, 명두바릿대가 있다. 방울은 굿에서 강신용으로 巫가 손에 드는 것이고, 부채는 巫가 굿에서 가무할 때 손에 드는 것이다. 대신칼 용도는 잡귀를 위협하여 쫓는 것으로 굿의 첫 번째 과정인 부정굿에서 巫가 사용하고, 굿의 맨끝 과정인 거리풀이에서 화랭이가 대신칼을 들고 서서 잡귀를 퇴송(退送)하는 巫歌를 구송(口誦)한다. 명두는 巫占具로 사용하는 것인데, 명두의 사용방법은 명두바릿대(직경 25cm, 높이 13cm의 작은 나무함지박에 참쌀을 가득 채워 놓은 것)에 명두를 꽂아 놓고 축원하면서 소원을 고하고 명두바릿대에서 명두를 뽑아 쌀이 붙어 있는 수를 보고 점괘를 푼다. 이 때 명두 안쪽에 붙어 있는 쌀의 수가 짝수로 떨어지면 不吉하고, 홀수로 떨어지면 吉한 괘(掛)가 된다.